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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만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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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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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치료를 통해 내가 처음 신앙의 도전을 받은 것은 어느 보육원에서다. 그 보육원은 가정의 불화로 부모가 맡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있는 곳이었다. 놀이를 하고 주인공으로 나온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였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놀려대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표현하였다. 그 드라마치료 마지막에 그 아이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 엄마를 데려다 주란 말이야”
또 다른 예는 어느 여성강좌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주인공으로 나온 집사님이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동생을 돌보며 빈곤한 가정을 이끌고 살아야 했던 이야기며, 나이 30이 다 되어서야 만난 어머니가 아직도 철없이 자기를 괴롭히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보여주었다. 그녀는 기도하면 된다는 말이 제일 싫었다고 말하였다. 교회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보면서 다들 하는 말은 “집사님 기도하면 되요 하나님이 집사님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예요”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자기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12년 동안 어머니가 돌아오라고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결혼해서 어려운 가정을 이끌고 있는 자신에게 돌아온 어머니는 자기를 괴롭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라고 말하였다. 교회에서는 감사하라고 하는데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허탈하게 말하였다.
이혼이 50%를 육박하는 이 시점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말이 그 깨어진 가정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게 될까? 야베스의 기도를 가르쳐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축복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기도의 강조가 우리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건들 이후로 나는 쉽게 기도를 말하지 못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겠다는 의지이며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겠다는 표현이며 그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곤 한다. 너무 아픈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기도만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함께 고통을 나눌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당신이 필요한 것이다.
어려운 삶을 기도로 이겨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획일적으로 모든 고통중의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도가 무슨 축복을 받는 자판기처럼 기도하면 다 된다고 말하게 되면 기도해도 삶의 질곡을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상실하게 된다.
내 수업을 듣는 어느 여대생은 착실한 학생으로 교회생활도 열심이다. 그런 그가 수업이 끝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펑펑 흘린 적이 있다. 자기가 들어온 학교가 창피스럽다고 어머니의 핍박이 계속됨으로 자기는 공부도 안 되고 멍한 상태로 일 년을 보냈다고 한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의지하며 말이다. 그런데 교수님의 말씀은 기도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씀하는데 자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을 하였다. 누구에게 그런 어머니를 욕할 수도 없고 자기를 알아주는 하나님 뿐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그녀를 위로했다. 너의 기도를 통해 나를 만나게 하였고 하나님은 나를 네게 보냈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기도만 하라고 말하고 내가 너를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너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치료하게 하고 그런 고통 중에도 이겨나갈 수 있는 훈련도 기도의 연장이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다.
기도를 한다며 사람과의 교통을 단절하고 내면으로만 들어가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자기의 고통을 고착화 하게 될 수 있다. 이는 심각하면 신체적인 질병을 유발하고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기도만이 아니라 기도와 더불어 책임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런 온전한 기도생활, 함께 삶을 나누는 공동체의 삶이 기도와 더불어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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