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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꿈.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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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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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축구!!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최종 목표보다 늘 한걸음 더 놓은 곳에
도달하고자 노력했다.
- 비벌리 실스 -

박지성은 축구를 좋아했다. 축가선수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박지성은 축구부 입단서 서명을 받기 위해 축구부 창단에 동의하는 서명인 것처럼 거짓말까지 해서 아버지를 설득하고 축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워낙 엄격했던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강경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박지성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이라 친구도 많지 않았던 아들이 축구만 하면 활발해지고 적극적이 되는 모습에 결국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박지성은 매일 축구 일기를 써가며 스스로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갔다.
아들과 함께 아버지도 같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박지성은 아빠가 축구를 하지 말라는 말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왜냐하면 축구를 그만두면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박지성에게 축구선수로서는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이 있었다.
그것은 너무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하다는 신체적인 약점이었다.
어머니께서 먹으면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진다며 개구리 삶은 국물을 끓여주시면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받아 마셨다.
심지어 내장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역겨워서 토할 정도였지만 꾹 참고 그 국물을 삼키곤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였다. 축구를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집요했다. 무엇을 하든 한번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고자 했다.
일본에서 19세의 나이로 처음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을 때 혼자 일본어를 공부해 상당한 실력을 갖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번 마음먹은 일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박지성의 성격은 영어 공부에서도 그대로 그러난다.
그는 수무 가쁜 프리미어 리그 일정에서 원정 경기가 있을 때조차 1주일에 두 번 하는 영어 과외수업을 빠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선수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물론 전체 팀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가 다가왔다.
그러나 박지성은 축구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재활 의지를 불태웠다. 2007년 세 번째 무릎 수술을 선수 생명이 걸린 중대한 결정이었다.
남은 시즌을 통째로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았을 때 주위에서는 그가 축구선수로서 재기하기 힘들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수술 후 힘든 회복 프로그램을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고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파견된 팀 담당자는 “이런 선수는 내 생전 처음 본다”며 감탄했다.
박지성에게 축구는 가장 절실하고 절박한 것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축구선수로 꿈을 이루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웃에 있는 통닭집이 오후 서너 시에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수 없게 되면 통닭집을 하겠다고까지 했다. 오전에 축구를 하고 오후에 일을 할 수 있는 통닭집을 직업으로 선택할 만큼 축구와는 멀어지기 싫었던 것이다.
명지대에 입학하여 올림픽 대표 팀에 발탁되었고 대학시절 일본 J리그에 진출하였으며,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네덜란드 PSV 아이트호번으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현재 소속 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화려해 보이는 발자취l에는 축구에 대한 박지성의 열정과 끈기와 노력과 인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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