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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야기|엑스포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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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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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때 엑스포 유치를 위해 내가 벌였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그중에 하나로 “엑스포의 밤”이라는 행사를 만들었다. 내무부를 설득하여 각 시, 도지사 주관으로 “엑스포의 밥”이라는 행사를 개최하게 한 것이다. 물론 나와 홍보부 직원들이 영상으로 엑스포의 맛을 보여주고 엑스포 개최의 의미와 내용을 설명했다.
엑스포란 이름으로 시, 도지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울시부터 제주도까지 돌아다녔다.
나는 엑스포를 정의 할 때마다 분명히 말했다.
“엑스포란 한 시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집약 전시하여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다” 즉 미래의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부연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엑스포 명예홍보위원 제도를 만든 것이었다. 사실 엑스포가 무슨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이 있는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도 아닌, 무언가를 전시하는 것에 불과한데 어떻게 관람객 수 1,000만명을 넘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엑스포장 내에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유치하여 손님을 더 끌어들인다는 작전을 세운 것이다. 문화관광부를 통해서 홍보에 나섰다.
엑스포 조직위원회에서 연예인 10명을 명예홍보위원으로 임명해서 나랏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후에 크게 표창한다는 내용의 홍보였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전화가 온 사람이 패티 김이었다. 사실 당시 내 머릿속에 가창력있는 가수는 패티 김, 조용필, 윤시내 정도였다. 그런데 패티 김이 먼저 손을 드니 바로 임명하고 언론에 보도했다. 그 다음에는 내 어머니가 좋아하는 “동백 아가씨”의 이미자 씨가 전화해 와서 바로 임명절차에 들어갔다.
그 다음으로 조용필, 국악인 조상현, 탤런트 고두심 등을 임명해 나갔다.
“송 부장, 좋은 사람들을 명예홍보위원으로 임명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도 좋지만 젊은 사람이 한 명쯤은 들어가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 명 위원장은 서태지가 어떠냐면서 추천했다. 나는 서태지에게 전화를 했다. 서태지의 공연장은 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서태지에게 임명장을 주려는데, 관중이 엑스트라는 빨리 무대에서 내려가고 서태지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오 명 위원장과 나는 서둘러 무대를 내려왔다.
관중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열광하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기 목사보다도 더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의 영웅들을 바로“ 서태지”나 “배용준” “비” 다음에 이야기가 나오는 “앙드레 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제 명예홍보위원 자리가 한 자리 남았는데 앙드레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을 명예위원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자신을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도 엑스포 홍조사절이 입는 옷을 국제대회에 걸맞는 수준으로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제의를 받아들여 앙드레 김을 마지막 명예홍보위원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관람객이 1,200만을 넘었다. 이러한 성취의 배경에는 대전 엑스포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은 그일에 대한 비전과 확신에서 생겨나며 자신감이 있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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