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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철원제일감리교회 복원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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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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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해만 남은 철원제일교회

철원제일교회는 1905년 장로교 웰번 선교사가 설립하였으나 1907년 선교지역을 분할할 때에 감리교회로 편입되었다. 한때 강원도 북부의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던 웅장한 옛 모습은 간곳없고 지금은 무너진 돌덩이들만 뒹굴고 있다.

1920년대에 철원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철원지역은 1919년 3월 10일 철원제일교회 박연서 목사를 중심으로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또한 ‘철원애국단’을 조직해 국내 독립운동 상황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고하였고 임시정부에서는 전달된 문서를 반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 철원제일교회는 부흥일로에 있었으며 1933년에는 새 신자가 50명이나 늘었고, 주일학교에 매주 300여명이 모이며 한때 교인수가 5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확장되었지만, 철원지역의 대표적인 감리교회로서 이렇다 할 교회건물이 없던 터여서 예배당 세우는 일이 시급했다. 마침내 1920년 5월 붉은 벽돌로 세워졌던 건물을 헐고 1937년 9월 현무암, 화강암의 서양식 건물로 특별히 이화여대 캠퍼스를 설계 시공했던 보리스(W.M. Voris)가 설계하고 시공하여 입당을 하였다. 1,200평 규모에 지하1층, 지상3층의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한강 이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손꼽히기도 하였다.

8‧15 이후 공산치하에서도 철원제일교회를 중심으로 기독청년학생들이 반공투쟁을 전개하다가 모진 수난을 겪게 되었다. 6·25전쟁 시에는 인민군 병영으로 사용되었으며, 기도처이던 지하실에서는 많은 반공인민과 기독교인들이 학살되기도 하였다. 교회가 폐쇄된 후 일부 성도들은 한탄강 절벽에 있는 동굴에서 카타콤베의 은둔생활을 하였는데, 인민군에게 발각되면서 일부는 ‘예수천당’을 외치며 한탄강에 투신하였고, 일부는 내무서로 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한 후 소식이 끊겼다고 한다.

한편 철원제일교회 인근에는 북한의 옛 노동당사 부서진 건물이 있다. 8·15 광복 후 북한이 세운 노동당사는 공산치하 5년 동안 철원, 김화, 평강, 포천, 경기 북부 일대를 관장하며 북한정부에 항거하는 인사들을 체포하여 구금하고 학살을 감행한 곳이다. 그 중에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끌려와 고난당하며 죽어간 기독교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 옛 철원제일교회 모습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철원제일교회는 파괴되었지만 기독교의 반공정신이 배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3․1운동의 역사성을 갖고 있어 근대기독교정신이 살아있는 곳으로 의미가 깊다. 그러나 긴 역사를 지닌 이 신앙의 요람이 6‧25한국전쟁에서의 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돼 현재 전면 출입구 등 일부 잔해만 남아 있으나 그 가치와 역사성이 인정되어 한국 근대문화유산 제23호로 지정되었으며, 감리교 총회 결의로 복원계획이 수립되어 지난해 10월 복원 기공예배를 시작으로 복원건축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 주소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00-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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