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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배재학당과 아펜젤러 선교사 (1858~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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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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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펜젤러 선교사

 

배재학당은 1885년 아펜젤러(1858~1902) 선교사가 세운 한국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이다. 그는 도착 후 ‘오늘 죽음의 철창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된 삶과 자유를 허락하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서울 정동에 자리를 잡은 그는 가난하고 무지한 조선백성들을 살리는 길은 우선 무지에서 해방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당시의 사회풍토는 한문은 진서, 한글은 언문이라며 한글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한글은 여성들이나 쉽게 배우는 것으로 천시하는 경향이 다분히 있었다. 교육의 기회가 양반자녀들에게 편중되어 평민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운 시대였다.

한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첫 선교사로 내한하여 정동에 자리를 잡음으로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가 생기게 되었다. 정동에는 처음으로 여성병원이 생기고 한글로 신문을 발행하여 근대언론문화가 시작되는 등 개화기 근대문화의 발상지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을 창설하였는데, 1886년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학교명을 하사받았다. 이는 ‘유능한 인재를 기르는 학교’라는 뜻으로, 한국 근대화의 주역인 이승만, 서재필, 윤치호, 주시경, 김소월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안에 ‘협성회’ 라는 토론회를 조직하고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 등을 강사로 세워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독립정신을 고취시킴은 물론 복음의 능력이 개인구원에 국한하지 않고 고난당하는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였다.

 

▲ 서울시 중구 정동 34-5 배재정동빌딩 동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한편 배재학당 동관은 1916년 유럽식 붉은 벽돌로 지어진 후, 1984년까지 배재고등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어 오다가, 배재중고등학교는 강동구로, 배재대학교는 대전으로 각각 이전된 후 2008년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으로 개관하였다. 지상3층 규모의 박물관은 124년의 역사를 지닌 배재학당에 관한 내용은 물론, 근대 교육의 현장을 조명하는 다양한 역사자료, 배재와 정동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대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전시관, 기획전시관, 체험교실, 및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1층의 체험교실은 1930년 당시의 교실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칠판 낡은 책걸상 등이 전시되어 근대교육의 변천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상설전시관에서는 고종의 하사품인 배재학당 현판과 120여 년 전 학생들이 사용했던 교과서 등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최초근대학생회’였던 협성회와 이를 토대로 독립협회의 탄생과 만민공동회 개최과정을 담은자료, 배재학당 출신인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초판본도 만날 수 있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기획전시관에는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풍광과 가옥, 한국인의 일상이나 한국여인에 대한 단상, 한국어 발전에 대한 집념, 배재학당 내의 우물을 외부인이 퍼가는 것을 막아달라는 아펜젤러 교장의 청원서, 감옥수감 중 이승만이 보내온 편지, 1948년 호놀룰루 지역 신문에 난 이승만 대통령 취임기사의 스크랩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소: 서울시 중구 정동 34-5 배재정동빌딩 동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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