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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주일 끝자락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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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찬성 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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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사님, 교회와 사택 지하실 내려가는 유리문 안과 밖은 천국과 지옥같습니다.

안에는 다육식물이 정겹고, 밖은 삭풍이 붑니다.

유리문 밖, 마당에는 눈들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장류사업팀이 관리하는 장독대 위에는 녹지 않는 눈들이 소복하고, 교회 마당 중간 중간에는 넉가래로 모아놓은 눈이 조금씩 녹고 있습니다.

만만찮은 식물들의 겨울나기

유권사님, 사막에서 자라는 다육식물은 밤에는 춥고 낮에는 뜨거운 그런 환경을 좋아합니다. 밤에는 영상 5도 정도 낮에는 영상30도를 웃도는 넉짝짜리 유리문 안은 그러니까 다육식물의 천국입니다. 다육식물 이 동해를 입지 않는 영상 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게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숙제입니다.

유권사님, 그래서 새벽시간이면 새벽기도회를 부지런히 마치고 제일먼저 교회와 사택 지하실 입구에서 전기난로를 온풍으로 맞춰놓고 1시간을 예약합니다. 이것은 다육식물을 위한 배려입니다. 새벽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추운시간이잖습니까? 그리고 사택 지하 보일러실로 내려가서 밤새 탄 연탄을 갈아주면 화초들이 얼쑤 하면서 좋아들합니다.

유옥순 권사님, 사람들도 환경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 곳에서 성장하는 것처럼 식물들도 마찬가집니다. 금황성이나 사해파 그리고 와송들은 다른 식물이 성장이 멈추는 온도인 영상 5도 안팎에서 예쁜 꽃이 핍니다. 물론 낮에는 습도 없이 뜨거울수록 좋아합니다만 말입니다.

그리고 사택 현관 입구 쪽에 늘어선 분재 몇 그루를 살핍니다. 소사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등입니다. 겨울에 이런 나무들은 얼어 죽지는 않지만 말라죽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적당할 때 물을 줘야합니다.

겨울에 물은 주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눈이 오면 분재주변에 잔뜩 쌓아 놓습니다. 조금씩 녹아서 화분으로 내려가도록 말입니다. 일부러 물을 주면 언 화분에 물이 고여서 화분과 나무가 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눈을 허리까지 덮어주면 스스로 녹아서 좋습니다.

유권사님, 이것이 제가 겨울에 안팎으로 관리해야하는 일들입니다. 한 가지 있기는 더 있습니다. 예배당의 화분들입니다. 강화 읍내의 <아름다운 화원>이 강화지역 6교회 강단에 화분을 바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 교회가 우리 교회입니다.

강화베다니 교회 성도입니다. 벌써 5년째 꽃이 시들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제철 꽃으로 바꿔 철따라 늘 싱싱한 강단을 만들어주는 헌신입니다.

처음 꽃가게를 열면서 헌신의 간절함을 담임목사에게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추천해주는 교회 강단을 헌신으로 도맡았습니다.

언젠가 설교시간에 감사로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교우들에게 읍내에 갈 기회가 있으면 <아름다운 화원>에 들려서 기도해주고 오라고 말씀드린 생각이 납니다. 한번 다녀오셨나요, 권사님.

그런데 주일 강단에 꽃이 드려지고 예배가 다 끝나면 그 꽃 관리는 목사 몫입니다. 그냥 밖에 두면 얼어 죽습니다.

법복을 벗고 안도감으로 나른한 시간에

새벽에 교회에 나가면 영하2-3도 가량 되니 얼어 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주일 오후예배까지 끝나고 앰프, 강단 초, 화목 난로, 전동스크린, 벽걸이 난로 등 돌아봐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을 돌보고, 영혼을 돌보고, 그리고 교회 주변을 돌보고 나면 그때야 비로소 성수주일 끝자락입니다.

사택에 들어와 법복을(法服) 벗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허기가 지고 피곤이 몰려오고 물먹은 솜처럼,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축 처집니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나른해지면 비로소 안도감이 생깁니다.

제 아무리 설교를 죽 쑤고 내려왔어도 그 시간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시간입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시간입니다.

유권사님, 이 시간에 아무 거리낌 없이 다육식물에 물을 주고 꽃핀 것을 만져주고 모처럼 눈길을 주는 시간입니다.

모름지기 목사는 이런 시간이 있어 목회를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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