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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강화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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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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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중앙교회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인천항에 첫 발을 내디딘 후, 1892년에는 제물포구역 책임자로 있던 존스(G.H. Jones, 조원시) 선교사가 강화선교를 위해 부임하였다.

존스 선교사는 강화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려고 했으나 강화유수의 거부로 갑곶나루에서 며칠간 전도하다가 인천으로 되돌아갔다. 한편 인천에서 술장사를 하면서 제물포교회(현 내리교회)를 다니던 이승환이 고향인 시루미마을(현 양사면 교산리 송산마을)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강화복음 전도의 발판을 마련하고, 이명숙 권사가 전도인으로 파송되어 예배드림으로서 강화의 첫 감리교 신앙공동체가 탄생되었다.

이후 초시 김상임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교인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루미에서 다리목으로 옮겨와 강화 최초의 교회인 교항교회(현 강화교산교회)가 설립(1893)되었고, 3년 후인 1896년에 한학자 박능일이 자기 집에서 서당학생 20여명과 종순일, 권신일과 함께 강화의 두 번째 교회인 홍의교회를 세운다. 또한 1900년 9월1일, 홍의교회 교인 주선일․허진일․김봉일 등에 의해 강화중앙교회가 설립된다.

강화중앙교회는 여섯 칸 반짜리 초가집에서 시작해 다음해 4월 기와집 25칸, 초가집 16칸을 구입하여 현 위치로 옮겼는데, 이때 존스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의 찰스 오토(Charless Otto)라는 교인이 보내온 기금으로 충당되었다. 이로서 존스가 강화성에 입성하려던 꿈은 8년 만에 강화 토착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강화중앙교회는 설립 8개월 만에 강화에서 가장 넓고 큰 예배당이 되어 외국인 선교사들이 머물면서 섬을 순회할 수 있게 되면서 초보단계에 불과하던 강화 선교의 커다란 구심점을 마련하였다. 이후 점차 성도가 늘어 1914년에 다시 교인들의 헌금과 미국 선교회의 도움으로 서양식 교회로 건축하였으며, 2000년에 “선교100주년 기념성전”을 건축․봉헌하였다. 또한 1904년 ‘월곶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26개 교회를 개척하거나 도움을 주는 등, 1세기 동안 강화지역 복음화의 그루터기 역할을 해 왔다.

한편 교육선교를 위해 1901년 교회부설로 신교육 기관인 “잠두의숙(蠶頭義塾)”을, 1902년에는 “합일여학교”를 설립하여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민중교육을 시작하였다. 잠두의숙의 교사와 학생들은 1919년 3ㆍ1운동 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 일로 교사 최상현이 체포되어 2년 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2년 재정난으로 인해 감리교선교부는 잠두의숙을 폐지하려고 했으나 교인들의 모금운동으로 되살아나 1923년에는 141평 2층 건물을 새로 마련하였고 이듬해에는 6년제 보통학교로 총독부의 인가를 받으면서 교명을 합일학교로 바꾸었다. 이후 두 학교는 하나의 학교로 통합되어 오늘의 합일초등학교로 발전되었다. 강화중앙교회는 한국전쟁 때에도 전화의 폐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방주역할을 하였다.

강화중앙교회에는 김씨 부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종 하나만을 데리고 살다가 80세의 고령에 복음을 접한 그는 성경을 읽기 위해 뒤늦게 한글을 공부하였다. 성경을 읽던 중, 주인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모두 한 형제라는 말씀을 보고 교회 식구들과 자신의 종 복섬이를 불러 (마18:15-20)을 읽고 주고는 “이제부터 너를 내 종으로 알지 아니하고 딸로 아노라”고 선언하며 노비문서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처럼 강화중앙교회는 선교초기부터 교인들이 실천적 신앙을 바탕으로 지역복음화를 주도하고, 일제치하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한국개화의 산실로 지난 1세기 동안 강화역사의 중심에서 지역의 복음화, 민족운동과 사회개혁을 주도해 왔다. 그리고 100여 년 전 서양선교사들의 도움과 선조들이 쌓은 믿음의 토대를 바탕으로 복음의 빚진 교회로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며 복음화율이 30%대에 달하는 강화지역의 완전한 성시화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인 동시에 복음적 선교, 자립적 선교, 토착적 선교로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 복음, 민족, 교회가 함께 어우러지며 민족과 지역을 구원한 구심점의 역할을 감당해 온 강화중앙교회의 역사는 오늘의 교회가 비추어 봐야 할 귀중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주소 : 인천 강화군 강화읍 신문리 549 (담임 이민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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