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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물러갈지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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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태화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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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주간을 앞두고

 

 

윤동주의 <십자가>라는 시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때는 일본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일제는 아시아의 맹주라는 기치아래 타국을 폭력으로 짓밟고 있는데, 그들은 이것이 민족 해방전쟁이라며 미화하기에 급급하고, 여러 나라는 막대한 피해를 비켜갈 수 없었다. 그 중 대한민국, 이미 식민지를 당하여 백성의 등골은 휘고 친일파들은 이 때다 싶어 설치고, 뜻있는 자들은 독립군으로, 저항시민으로 애국 선봉에 섰으니, 여기 유학생 윤동주, 그 뜨겁게 달아오르는 독립에의 의지로 분연히 행동에 나섰으니,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십자가>이다.

따스한 햇볕은 정겹지만은 않다. 햇살은 일본 순사처럼 뒤에서 쫓아오고 교회 종탑에서는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긴 대한의 청년은 휘파람을 불지만 어디에 안착할 수 없다. 나그네처럼 그냥 서성일 뿐이다. 시각은 석양이 지난 후인가. 하늘은 어두워가고 하늘은 고즈녁하게 저물어 간다. 석양이라도 붉게 물들어간다면 차라리 얼마나 좋을까. 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보면 애통해 하는 시대의 울분이라도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아주 적막하게 시대는 저녁처럼 저물어 간다. 이러한 시대에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햇살은 나를 추적하듯 쫓아오다 교회당 첨탑에 멈춰선다. 십자가에 걸린 것이다. 먹구름이 대지를 삼킬 듯 넘실대며 다가오다 높은 산 정산에 멈춰선 것처럼 햇살도 정지하고 있다. 모든 것이 멈춰서있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우리 주님이 괴로웠던 마지막 일주일에 더 괴로웠던 처형대였다. 나라와 민족이 주권을 잃고 떠도는 가운데, 나는 고난의 예수님처럼 괴롭다. 순종할 수 있었던 주 예수님은 차라리 행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난 속에 행복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역설의 십자가, 그 십자가가 나에게 가르쳐준 이 한 마디. 시대는 위기로, 경쟁으로, 자본주의의 역습으로, 비인간화의 공습으로 어두어가지만, 이 우겨쌈을 당하게 하는 시대조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 그것은 피를 흘리는 일이다. 조용히 흘리는 일이다. 꽃처럼 피를 흘리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의 피를 흘리는 일이다.

사순절이 깊어간다. 곧 고난주간이 시작될 것이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한발짝 한발짝 모욕의 십자가로 다가가시는 주 예수.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승리의 부활이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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