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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광복의 날이 있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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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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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역사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은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이라고 본다. 필자가 광복(光復) 60주년이 되는 2005년에 “영상으로 보는 조선의 복음 수용에 관한 연구(A Study on the Early Christian Misson of Korea by Visual and Pictorial Materials)”라는 논문을 작성해 가는 가운데 두드러지게 눈에 뜨인 대목이 광복이었다. 그러나 논문의 제목대로 조선이 복음 수용에 관한 시기를 1910년까지로 보기에 논문 내용으로 삼지 못했고 그 뒤로 이 광복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왜 우리나라에 광복이 있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36년에서의 해방이라고 하면 이는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倂)에서부터 계산된 것이다. 그러면 1910년 이전의 조선은 주권국가로서 행세를 하다가 일제의 침략을 받은 것인가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10년 이전 그러니까 1875년 운양호 사건과 조일수호조약(1876년), 1871년의 신미양요와 조미수호조약(1882), 조청 상민수륙무역 장정(1882), 조영통상조약(1883), 조독수호조약(1883), 조이통상수호조약(1884), 조로통상수호조약(1884), 조불수호통상조약(1886), 조오통상수호조약(1892), 조벨통상수호조약(1901), 조덴통상수호조약(1902) 등을 보면 당시 조선이 과연 주권 국가로서 이런 수호조약을 체결한 나라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1870년대부터 이미 조선은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아 왔다. 그렇다면 1945년 8월 15일은 일제 36년에서의 해방이라는 의미보다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 언제부터 우리 조선이 주권을 상실하고 흔들린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크게 눈에 들어 온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세도정치였다. 1800년 정조 이산이 죽고 순조가 등극하면서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섭정을 하게 되었고 정순왕후가 1803년에 죽자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시작되어다.

세도정치가 행해지던 19세기는 봉건사회가 급격히 해체되는 변동기로서 일반백성은 물론양반들마저도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갔다. 조선후기 정치 기강의 해이와 그로 인한 탐관오리의 부패가 기승을 부렸다. 영·정조 이후 노론이 득세하면서 순조(純組 1800~1834), 헌종(憲宗 1834~1849), 철종(哲宗1849~1863) 3대에 걸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이 정권을 농락하는 세도정치가 계속되고 있었다. 외척 권신들은 왕명의 출납에서부터 인사행정에 이르기까지 전권을 장악하였고, 자연히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파행적인 인사행정이 자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왕실의 권위는 실추되고 국가기강은 날로 해이해져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 등 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들의 대민수탈이 누적되면서 민중의 생활고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농민들은 점차 격화되어가는 사회모순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1862년(철종 13)에는 삼남(三南: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에서 비롯한 전국 각처에서 민란이 빈발하게 되었다. 특히 1862년 임무 년 한 해 동안에 진주를 비롯해 전국 37개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 온 나라가 민란의 와중에 휩싸였다. 이러한 민란은 사회불안을 가중시켰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민중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북상도강을 단행하는 사례가 빈번해져 중국에 조선족이 형성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전국에서 일어난 민란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국의 민란! 이것은 출2장 23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하였다."고 한 것처럼 조선의 백성들이 하늘을 향한 부르짖음이라 생각되었다. 만일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 대한 부르짖음이라면 출3장 7-10절에 모세를 부르시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 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게 하리라라고 있는 것처럼 조선의 백성을 인도해 내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일까? 이듬 해 철종이 승하하고 고종이 등극하여 섭정을 하게 된 대원군은 흩어진 조선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왕권을 회복하겠다고 사회제도개혁을 하며 조선의 주권을 회복하고자 몸부림친 일을 보면 주권을 회복하기까진 아직 안개 정국 속에 있지만 그래도 주권회복을 위한 그 첫 출발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결국 정순왕후 3년의 섭정과 60년 세도정치가 조선의 주권을 무너트렸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출발한 대원군이 등장한 1863년부터 1945년까지의 긴 여정에서 주권회복을 위한 숱한 노력과 이로 인한 1945년 8월 15일의 조선의 기쁨은 일제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주권회복으로서의 광복이라면 그 의미가 분명한 것이다. 앞으로 대원군을 비롯해 조선의 주권회복을 위한 사건들을 정리해 광복을 이룬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은식 목사(D. Min)

미추홀예음교회 담임목사
제물포문화아카이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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