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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도시를 가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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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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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 쉬말칼덴 

▲ 쉬말칼덴 시청과 광장


루터의 종교 개혁 사상은 먼저 독일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크고 작은 도시에서 비신앙적인 면죄부와 타락한 교황권에 대한 반론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종교 영역에만 유효한 움직임이 아니었고, 당시 정치와 권력의 판도를 바꿔놓은 거대한 역사 변화의 축이었다.

헤센의 필립공은 독일 내 루터의 개혁사상에 영향을 받아 일찍이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귀족 중 하나였다. 그는 자연히 신성로마제국 카알 5세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필립공은 이 변화가 실제로 가져올 미래를 꿈꾸던 선각자였다. 그를 중심으로 1530년 겨울 쉬말칼덴 동맹이 결성되었다. 같은 해 발동된 아우그스부르크 제국의회와 보름스 칙령에 의해 필립공은 제후 자리에 올랐고, 그는 개혁 신앙을 보호하는 후견인이 되었다. 독일 중부 지역의 작은 도시 쉬말칼덴은 이때부터 루터식 종교개혁의 상징이 되었다.
▲ 헤센의 필립공

1537년 이 도시는 영광스런 제후의 날로 기록되고 있는데, 프랑스, 덴마크, 교황이 파견한 사절단, 28개 자립도시에서 보낸 대표단들과 귀족들, 그리고 신학자들이 모여 신앙의 자유를 위한 헌장을 확인하였다. 이 자리에 루터와 멜랑흐톤이 배석하여 그 존재감을 한층 더하게 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동안 개혁 운동을 반대하던 가톨릭과 그들과 결탁한 황제군은 곳곳에서 대립하고 있었다. 헤센의 신생 귀족들이 이끌던 군대는 수적으로 열세였다. 신-구교가 배경이 되어 1546, 47년에 벌어진 전쟁에서 황제군은 쉬말칼덴 근처 뮐베르크에서 승리를 거둔다. 신생 개혁 세력들은 신성로마제국에 투항하거나 절대적인 압제에 떨어지게 되었다. 일부 지역은 다시 가톨릭 권력으로 복귀하였다. 이로서 루터의 죽음 이후에 주춤하던 개혁의 물결이 더 큰 암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는 이후 삼십년 전쟁으로 비화하는 계기가 된다. 1618-48 년까지 지속된 크고 작은 전쟁으로 독일은 심각한 사회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 시대가 독일에서는 바로크 시대로 불리우는데, 이 때 양극단적인 세계관이 출현한다. 전쟁의 종말론적 분위기를 통해 한 쪽에서는 회의주의, 염세주의가 힘을 얻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상 끝이나마 행복을 누려보자는 쾌락주의 내지는 종교로 귀의하려는 경건파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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