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분류

루터의 도시를 가다(23)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 루터가 머무르며 설교했던 _루터하우스

쉬말칼덴(Schmalkalden) 동맹은 1531년 결성된 프로테스탄트계 귀족들로 이루어진 정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이 가톨릭의 탄압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그 불길이 살아나느냐, 아니면 꺼지느냐 하는 기로에 선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이었다. 여기에 불씨를 되살린 한 인물이 있었다. 헤센의 필립공(1504-1567)이었다. 그는 1518년부터 헤센을 다스렸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을 베풀었다. 헤센에 불어온 르네상스는 필립공으로 가능했다.
정치, 주의회, 경제, 세금제도, 교육, 문화, 과학, 교회 등 여러 분야에서 행정이 공의롭게 되게 했을 뿐 아니라, 빈민과 병자를 위한 사회기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528년 마르부르크 종교 회의를 주선한 이도 바로 필립공이었다.
▲ 쉬말칼덴 동맹을 주도한 헤센의 필립공

헤센의 필립공이 갖게 된 별명은 ‘용맹한 자’이다. 그는 루터의 사상이 단지 교회 변혁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를 변혁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루터가 추구하는 개혁이 독일 변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필립공은 귀족들이 종교개혁 사상을 받아들이므로 정치적으로도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부여된 용맹한 자라는 명예는 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에게 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념에 가득한 그의 행동은 마침내 종교개혁 사상을 수용하는 귀족들을 결집시켰다. 수년 동안 지속된 설득 작업으로 쉬말칼덴 동맹은 공식적으로 1531년 2월 27일에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동맹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1537년 회의에 모인 이들은 종교개혁의 힘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참여한 이들의 규모는 방대했다. 16명의 제후, 6명의 공작, 황제와 교황의 사절단, 불란서, 네덜란드 왕실의 대사, 28개 도시의 파견단, 42명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이었다. 여기에 루터와 멜랑흐톤이 있었다.
▲ 쉬말칼덴 시내 중심부

그러나 이 동맹은 1546-47년 사이에 막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이른바 쉬말칼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정치 동맹을 가톨릭계 귀족 연합이 전쟁으로 응대한 사건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필립공은 체포되어 멀리 네덜란드로 이송되었고 쉬말칼덴 동맹은 해체되었다. 하지만 그 신앙고백과 개혁 정신은 지금까지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