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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도시를 가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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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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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 하이텔베르크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1517년 10월 31일 내걸었던 95개조 논박문은 유럽 곳곳으로 배달되어나갔다. 때로는 지식호사가들이, 때로는 종교지도자들이, 때로는 학자들이 루터의 저술을 목이 타게 기다리고 있던 중 독일 최고(最古)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교(1386년 설립)에서 루터를 공개청문회를 열어 초청하였다. 그는 이 초청에 순순히 응했다. 1518년 4월 26일 루터는 청문회에 섰다.
청문회는 찬반 양쪽으로 나눠졌다. 회의는 소란스러웠다. 면죄부 논박문에 반대하는 이들은 루터의 생각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고, 젊은 학자와 학생들은 루터의 입장에서 쟁론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청문회에 모인 이들 중 열 명 가량의 학자들이 루터의 주장을 옹호하였다. 그들 가운데 마틴 부처(M.Bucer)도 있었다. 그는 이후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칼빈을 만나는 과정에서 루터의 개혁 사상과 교육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 청문회가 중요한 깃점이 되는 것은 여기에 참가한 학자들이 루터 사상을 동서남북으로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이델베르크는 종교개혁 사상을 전하는 또 하나의 관문이 되었다.
반면 청문회는 루터로 하여금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과 칭의론이 그것이다. 십자가 신학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인도하시는데 고난을 통해 영광에 참여하게 하신다. 고난없는 영광은 존재할 수 없다. 구원은 고난을 전제로 한다. 고난은 성도의 영적 싸움의 한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을 바라볼 때 성도들은 환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또 이렇게 고백한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더구나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없다. 사람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로 가능하다. 구원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인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청문회는 루터의 사상을 더욱 깊게, 더욱 든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종교개혁은 분명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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