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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도시를 가다(2) - 에어푸르트(법학 공부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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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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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푸르트 대성당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본지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루터와 관련한 도시를 선정, 게재한다. 종교개혁의 본질과 한국교회 개혁의 의미를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을 통해 찾아본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러하듯 루터의 아버지 한스 루터는 아들에게 기대가 컸다. 자신은 탄광촌에서 먹고 살아야 했지만 아들은 크게 성공시키고 싶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대한 꿈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루터는 만스펠트, 마그데부르크, 아이제나흐 등 여러 도시를 거치며 교육을 받다가 드디어 그의 운명적 장소가 되는 에어푸르트(Erfurt)에 도착한다(1501년). 이 도시는 대성당과 세베리(Severi Church)를 세우며 수많은 순례자들을 불러 모으는 제법 규모가 잡힌 상태였다. 에어푸르트를 두고 루터는 자신의 영적 고향이라고 고백하였다.
루터는 처음에 아버지의 원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꿈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도 법학을 공부하다 하나님께 붙잡힌바 되었는데, 법학은 당시 의학, 신학 등 출세를 보장받던 학문 중 하나였다. 루터나 칼빈이나 회심을 체험하면서 세상 학문처럼 보이던 법학를 통해 철저하고 진지한 학문성을 연마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성령을 덧입혀 훌륭한 저술을 하도록 준비시키셨다. 바울 사도는 회심의 면에 있어서 누구보다 종교개혁가들의 모델이 된다하겠다. 바울도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정한 학문을 연마하지 않았던가. 주님은 바울을 회심시켜 얼마나 귀하게 그의 예전 학문까지 사용하셨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루터의 삶도 바울을 닮았다. 그는 에어푸르트에서 운명적 부르심을 입는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이 말씀이 루터에게 실제로 임하신 것이다. 그는 에어푸르트 북쪽 쉬토토른하임이라는 마을 곁을 지나다 악천후를 만났다. 폭풍 속에서 벼락이 내리치며 나무를 불태우는 광경이 벌어졌다. 그는 기겁하고 놀라 땅바닥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서원하였다. “거룩하신 마리아여, 나를 살려주시면 주님의 일꾼이 되겠나이다.” 그날은 1505년 7월 2일로 기록되어있다.
루터는 지체하지 않고 에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1505년 7월 17이었다. 서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2주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아버지는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2년 뒤 1507년 4월 4일 루터는 에어푸르트에서 사제 서품을 받는다. 이때까지도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 루터가 회심 후 들어간 어거스틴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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