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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도시를 가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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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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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권력자 알브레히트 추기경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 할레


할레(Halle)는 루터가 태어난 아이스레벤에서 동남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루터는 이 도시를 자주 방문하고 설교하며 복음중심의 신앙과 삶을 역설했다. 루터의 대적자들은 독일 전역에 있었다고 봐야하지만 이렇게 지척에 루터에 맞서는 실력자가 존재할 줄은 몰랐다. 알브레히트 추기경(Albrecht, 1490-1545)이 바로 그였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선택했는데 정치적 수완이 탁월했다. 24세 때인 1514년 이미 마인츠 총주교 자리에 올랐고 1515년경에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마인츠 교구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추방하도록 했다. 이런 강력한 행동을 통해 알브레히트는 신성로마제국의 정치, 종교계에 주요 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형과 함께 북부 독일을 흐르는 오데르 강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대학을 설립하는 열정을 보였다.

루터가 설교한 할레시 중앙에 자리한 마리아교회

알브레히트 추기경은 할레에 거주하면서 30년 가까이 루터의 새로운 신앙운동을 저지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인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어서 나름대로 교회 개혁을 진척시키려 하였다. 이 일로 울리히 후텐(Urlich von Hutten)을 초빙했는데, 그가 루터의 열렬한 지지자임을 알지 못했다. 알브레히트가 추구한 반 루터 동맹은 특히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리게 했는데 특히 면죄부 사제로 알려진 테젤(Tetzel)을 후원했다. 이런 행동은 결국 루터로 하여금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도록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했다.
알브레히트의 권력 아래에 있던 할레에서 루터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할레는 점점 종교개혁의 물결로 새로워갔는데 17세기에 이르러 경건주의 운동의 본산으로 탈바꿈했다. 도시 중심에 있는 마리아교회는 루터가 설교한 주요 유적 중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1685년 헨델이 유아세례를 받았고, 경건주의의 방대한 서적이 보관된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할레는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면서 대학이 세워지고 학생들이 몰려드는 왕성한 영성을 전파하는 도시로 한동안 명예를 안았다.
알브레히트 추기경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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