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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뒤에 숨겨진 또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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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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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그런 모습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스스로 숨기고 가리고 하는 모습이 마냥 즐겁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숨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그러한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병명이 가면우울(masked depression)입니다. 나 자신과 직면할 때 다가오는 또 다른 나로 인하여 들어난 나와 가려진 나와의 거리감이 클수록 가면우울은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하여 불철주야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것이 나는 가두고 닫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시라도 심연의 나를 보고자 하면 저 스스로 놀라 그만두고 맙니다. 혹시 수렁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될까봐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을 더 합니다. 아니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조차도 토설하지 못한 채 그리 살아온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각하기를 나는 프로이며 전문가라는 가면으로 나를 가두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목사의 가면과 연구소장의 가면 그리고 좋은 아빠의 가면 좋은 가장으로의 가면들 수많은 가면들로 가득찬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하나씩 벗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속에 있는 나의 속사람으로 드러내며 그 드러남이 나로 그리며 살고자 합니다. 혹자는 제가 무너졌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유하고 싶습니다. 감정에 성실하고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나를 미사어구와 가면의 잣대에 견주어 부족함이 없이 하기 위하여 죽도록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자세와 하나님 앞에서 종 됨의 자세 그것으로 충분한 모습으로 살고자 합니다.
참 많이 두려워했고, 상대적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잠을 못 이룬 적이 많았습니다. 불안한 마음 수시로 다가왔고 심지어 내게 믿음이 있는가를 의심할 만큼 나를 짖누르기도 하였습니다. 공포와 심리적 불안정으로 어찌할 바 몰라 한 밤을 꼬박 보내기도 하였고, 밤새 5번 이상 깨어나고 스스로 나를 가두고 내가 만들어 놓은 가면에 맞추어가려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오면 어려움을 이해하지 않으려했습니다. 왜 바보같이 이렇게 힘들어 할까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까? 라는 중압감이 나를 더욱 가면우울질환으로 몰아왔습니다. 그래서 가슴의 이야기, 감정에 몰려오는 상처들 내 속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됩니다. 이렇게 속사람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나를 보고 “목사님은 그런 분이 아닌 줄 알았는데” 하고 실망어린 모습으로 바라볼까 두렵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또 저의 가면을 염려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진리가 자유하게 하십니다.
자유하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앞에 나의 모습 그대로로 살아가렵니다.
가면을 벗는 시간이 (워낙 오래 쓰고 있었기에) 오래 걸리게 될지라도 다 벗고 자유로운 길로 걸어가렵니다.
가면을 벗고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며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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