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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이사칼럼|인천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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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곤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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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영락교회 고창곤 목사

인천하면 항구, 항구하면 갈매기, 이렇게 연상 법으로 떠오르는 것이 갈매기이다. 갈매기는 몸길이가 30~70cm의 크기로 흰색의 아랫면과 윗면은 잿빛색깔의 색조를 띈 갈매기과의 바다조류이다. 1회에 3~4개의 알을 낳고 50일이면 새끼가 부화되어 둥지를 떠난다. 북극권 갈매기는 큰 갈매기, 북반구 쪽에 서식하는 갈매기는 중형갈매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붉은 부리갈매기와 괭이 갈매기가 서식하는데 한국 연안에서 보통 볼 수 있는 것은 소형 괭이 갈매기이다.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신도에는 노랑부리와 괭이 갈매기가 1988년에 천연 기념물 360호로 지정되었다. 갈매기들은 밀집된 군체를 이루고 바다 멀리까지 나가서 물고기떼 위에 모여 있어 이것을 보고 어부들에게 어장으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천에서 영종도를 배편으로 가려면 월미도에서 배를 탄다. 배를 타고 출발을 하면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사 본 경험은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갈매기가 우아한 모습으로 배 주변을 나는 모습, 손에 잡힐 듯 사람 가까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활공하는 장관을 이루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면서 그것에 길들여진 갈매기가 과자 하나에 목숨을 걸듯이 달려드는 모습에 신기해하며 재미있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하지만 그 모습을 한참 보노라면 나중에는 목이 멤을 느낀다. “저것들은 하루 종일 배만 쫓아다니다 새우깡 몇 알 주워 먹고 영양 실조되어 쓰러지거나 아니면 연안부두 음식점의 버려진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갈매기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에서다.
누가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착한 갈매기를 하루 종일 오가는 배만 따라다니면 새우깡 몇 알갱이에 목숨을 걸게 만들었나?
해옹호구(海翁好鳩)란 말이 있다. 열자(列子) 황제편(皇帝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갈매기를 너무 좋아해 아침저녁으로 갈매기와 놀아주는데 수백 마리가 넘는 갈매기가 그에게 찾아왔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가 갈매기와 친하다고 하니 그 갈매기를 잡아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싶다.”라고 부탁했다. 그는 다음날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바닷가에 갔다. 그런데 갈매기들이 그 사람 머리 위를 맴돌기만 할 뿐 그전처럼 주변에 모여와 앉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뒤에 “지식 있는 자의 말은 떠드는 말이고 지혜 자들이 안다는 것은 천박한 것이고 지극한 행위는 작위(作爲)가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겼다. 이것은 인위(人爲)를 부정하는 노장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아무런 말이 없고 아무런 뜻을 보이지 아니한다고 해서 다 자기 뜻과 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갈매기와 같은 동물도 자기에게 아무런 욕심 없이 자연스럽게 대할 때는 새들이 모여오다가 딴 뜻을 품고 ‘갈매기를 잡아야겠다.’하는 마음으로 갈매기를 대하니 갈매기가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해옹호구(海翁好鳩)’란 말이 오늘날 크게 교훈이 된다.
오늘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나침반 없이 표류하는 배처럼 세상의 보잘것없는 것을 쫓아가며, 자기 가치를 상실하고 새우깡 하나에 목숨 건 갈매기와 같은 위기 상황에 몰려있는 것은 미래를 보는 눈이 미약해 가치관의 혼돈 때문이다. 세계의 가치관을 10년간 위로 구분해 생각해 보면 1920년대 자본주의가 초호황을 이룬 시대는 포효의(Roaring)시대, 경제공황이 덮친 1930년대는 우울한(Depressed) 시대, 전쟁의 비극으로 점철된 1940년대는 전쟁(War)시대라고 불렀다. 큰 전쟁이 끝나고 작은 전쟁이 국지적으로 발생했던 1950년대는 작은 평화의 시대라고 했고, 1960년대를 격동의 시대, 1970년대는 자기중심의 시대, 1980년대는 탐욕(Greed)시대라 규정하고 1990년대 시대를 대중문화(Pop Culture)의 시대, 2000년대는 밀레니엄(Millennium)시대이며 IT시대라 하고 있다.
오늘 2012년의 시대 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는 IT시대에서 BIO산업의 시대로 전환되어가는 시대이다. 지난 5월 달에 삼성 이건희 회장은 “우리 삼성이 10년 후 2012년에는 반도체나 만들고 TV나 휴대폰이나 만들어서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삼성은 BIO산업에 사활을 건다. 10년 뒤 태양열 전기개발과 자동차 전기 배터리 개발을 위해 17조를 추자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안목이다. 일본 도요타도 ‘50년 뒤 한국은 도요타를 얼마나 살 것인가?’를 연구하며 50년 뒤 한국의 운명과 국가의 힘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좀 두려운 마음이 든다. 60년 전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총 GNP는 35불에 불과했다. 지금은 20,000달러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의 군운은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 민족이 갈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과 내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 모든 계획과 문제를 해결의 길은 “존재 하시는 하나님(The God Who is there)”께로 돌아가야 한다.
인천 갈매기가 이제는 여객선을 따라 다니지 말고 넓은 바다로 나가야 하듯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 나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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