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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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과 乙
2015년 01월 18일 (일) 23:01:03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2015.1.12.>

甲과 乙

 

‘갑’과 ‘을’의 관계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특별한 사람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갈등의 면면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에 반응도 뜨겁다. 혹여 이로 인해서 아픔과 상처가 남거나 깊어져서는 안 될 것이련만 사건이 이어지니 걱정이다.

한데 돌아보면 ‘갑’과 ‘을’의 관계는 요즘 새롭게 형성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한반도의 5천년 역사가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양반과 천민, 양반은 양반대로 다시 신분의 차이를 두었고, 천민도 마찬가지로 천민 사이에 다시 격을 두어 신분에 따라 사람을 구별했다. 반만년의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신분사회를 형성해왔기에 어떤 의미에서 그 습성이 우리 모두의 몸에 배어있는 것이 아닐지.

그러니 갑과 을의 관계는 어떤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본성 안에 잠재해 있는 속성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입장이나 여건이 못 되기 때문에 감추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잠재해 있던 속성이 드러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갑질’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현상은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보여준다. 을의 입장에 있던 사람이 집권을 하게 되면 그 입장이 돌변하여 자신의 갑질을 당당하게 정당화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신분 상승을 할 수 있게 되면 어제까지의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한 순간에 갑의 입장이 되어 소위 갑질을 권리와 특권으로 여긴다. 또한 그것을 능력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을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겪어왔음에도 자신의 신분이 바뀌는 순간 더 이상 을의 입장은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을의 무능력을 지적하고 소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식이 된다. 자신도 그러한 을의 입장에서 갑으로 신분 상승을 했으니 당연히 갑질은 갑의 권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옛말에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시어머니를 갑이라고 할 때 며느리는 을일 것이다. 시어머니가 을의 입장이었을 때 즉 며느리 입장이었을 때 이다음에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 절대로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정작 자신이 갑의 입장인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결국 자신이 며느리였을 때 어떻게 고생을 했는지를 강조하면서 며느리에게 을의 입장을 강요하는 갑이 되어있다는 말이 아닐까.

지난 주간에 뉴스거리가 된 어느 경찰청장이 공식석상에서 부하직원들에게 막말을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경찰서장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가 가는 곳마다 유사한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즉 을의 신분에서 갑의 신분이 되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참으면서 견뎌온, 그리고 최고 지휘관으로 승진한 다음에 자신 이외의 모든 부하직원들은 그의 눈에 ‘을’로 보였는 모른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그것은 갑의 권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부하가 항명 아닌 항명을 함으로써 그의 ‘갑질’이 세상에 알려졌고, 급기야 부하들과 언론 앞에서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하는 씁쓸한 모습을 보면서 ‘갑질’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 가운데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고 한 것을 기억한다면 갑과 을의 관계는 단지 신분과 능력의 차이로 다른 사람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갑의 입장은 을의 입장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갑의 신분을 가진 자는 갑으로서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신실하게 감당함으로 을로 부터 칭찬과 존경과 감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의무와 도리를 다해야 한다.

낮아짐을 선택하는 것, 그것은 갑과 을의 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하나의 길이다. 이때 낮아짐의 선택은 을이 아니다 갑의 몫이다. 을은 이미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타락한 속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은 낮아짐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의도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몸에 배인 습성이 갑과 을의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 따라서 갑과 을의 관계를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갑이 을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의식과 여유를 갖는다면 최소한 ‘갑질’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을은 갑의 입장을 존중할 수 있을 때 갑의 갑됨을 기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게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것은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너’는 단순히 ‘너’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너’이기에 그 자체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단지 ‘을’이 아니라 나와 또 다른 하나님의 형상을 허락받은 존재로서 ‘너’인 것이다. 그렇다면 ‘너’를 단지 ‘을’로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바가 없는 타락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악한 속성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갑도 을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서로가 존중할 때 아름다운 삶과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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