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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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게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떤 사랑을 할까?
<이프 온리>
2011년 02월 23일 (수) 15:11:46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영화 <이프 온리>는 하루의 시간을 다룬다. 만약 나에게 하루가 두 번 반복된다면 어떻게 살까? 첫 번째 하루를 보낸 후 두 번째 하루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인생을 다 아는 듯한 상담자 역할을 하는 택시기사. 그가 하루를 더 부여한, 아니 미리 보여주고 두 번째 날을 진정한 하루가 되게 한 남자 주인공 이안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일을 중시하는 영국 남자 이안과 사랑과 관심을 늘 바라는 미국 여자 사만다는 서로 아쉬움을 많이 느끼는 커플이다. 늘 일, 일, 프레젠테이션, 투자 유치에 찌들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안에게는 일이 우선이다. 사랑하긴 하지만 사만다의 부탁을 다 들어줄 수도, 졸업식을 챙겨줄 수도 없다. 중요한 투자유치 설명회가 앞에 있고 2주간의 출장이 예비되어 있는 그는 택시 기사가 얘기하는 계산 없이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투자설명회 자리에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놓친 줄 알고 가지고 들어간 사만다 때문에 결국 투자 유치를 실패한 이안은 우울한 마음으로 하루 일을 마치고 사만다의 졸업 콘서트 장에 억지로(?) 간다. 거기서도 일 걱정과 무관심으로 대충 때우고 사만다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난 후 (그) 택시기사를 따라 가려고 했으나 11시 정각에 사만다는 교차로에서 충돌 사고를 당한다. 이안을 남겨두고 사만다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일기를 보고 후회하는 이안….
다음날 아침 사만다의 일기를 껴안고 잠자던 이안은 소스라치며 놀란다. 그곳에 사만다가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된 또 하루의 삶, 이제 이안이 달라졌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에 얼마나 이안이 달라졌는가?

그녀를 알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오늘 자체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었다. 이안은 급히 투자설명회를 마쳐놓고는 사만다와 함께 런던을 떠난다. 사만다가 가고싶어한 대로 자기 고향으로 함께 가서 하루를 지낸다. 고향에서 이안은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한참 때 실업을 겪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해 무너진 기대와 그로 인한 상처도 이야기한다. 사만다가 말한다. “왜 이제 이야기 해?” 그렇게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며 사만다를 사랑한다고만 말해왔던 이안은, 사랑이 무엇인지 서서히(그래야 하루에 불과하지만) 깨닫는다. 언제나 자신은 이안의 일 다음이라고 여기며 서운했던 사만다는 이안의 달라진 모습에 감격한다.
계산하면서 몸을 사렸던 사랑이 아니라 5년 혹은 50년이라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이안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안은 사만다가 참으로 고맙다.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어서.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 자기 일보다 그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안은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택시는 여전히 어제와 같이 그들 앞에 다가왔고 이번에는 이안도 사만다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는 사실이 어제와 달랐다. 10시 59분,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11시가 되어 사고 내는 차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을 본 이안은 사만다를 감싼다. 어제와 달라진 죽음이다. 사만다 대신 이안이 죽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희생이 현실이다.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이안은 죽음으로 사만다를 보호했다. 6개월 뒤 사만다는 멋진 노래를 부른다. 추억마저 접어두고 눈물을 거두고 씩씩하게 살래요. 이안이 졸업 콘서트에서 자기에게 노래를 시켜 청중 앞에서 불렀던 그 노래, 그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안은 고향 마을 산을 오르다 산장에서 사만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어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만다의 질문은 간단했다. “자기하고 보내야지.” 그렇다.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죽음도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안은 그 사랑을 보았고 그렇게 실천했다. 대신 희생하는 사랑.
이런 희생하는 사랑, 관심 가지는 안타까운 사랑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2%가 아닐까? 우리는 일 때문에 혹은 또 다른 무엇 때문에 본질적인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랑을 실천하시기 위해 이 땅, 지저분한 곳, 죄악이 가득 찬 곳에 친히 오셨는데 우리는 그런 희생의 100분의 1도 할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사랑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아야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제대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을 사는 내게 또 다른 하루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까? 아니 오늘 이미 내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희생할까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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