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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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스크랜턴 선교사와 전덕기 목사
2010년 08월 06일 (금) 13:37:42 박경진 장로 진흥홀리투어(주),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초기 한국교회 선교는 서울 정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외국공관 주변으로 선교사들이 모여 살면서 정동을 중심으로 교회와 교회기관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턴은 남대문시장이 있는 서민 거주지인 상동에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바로 상동교회이다.

메리 스크랜턴은 54세이던 1885년 의사 겸 목사인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1856∼1922) 가족을 이끌고 미 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메리 스크랜턴은 이듬해인 1886년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화여고·이화여대의 전신)을 세우는 등 20여 년간 여성교육과 선교에 헌신하였다. 한편 아들 윌리엄 스크랜턴은 민중선교에 힘썼는데, 배재학당을 세운 아펜젤러나 제중원의 알렌 등이 지도자층을 길러내는 ‘엘리트 선교’를 표방한 것과는 달리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혜택에 집중했다. 1886년 6월 현재 정동제일교회 자리에 ‘미국인 의사병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진료를 시작하였고, 이후 병원을 남대문으로 옮겼다. 그리고 1893년 병원교회를 정식 상동교회로 조직하며 초대 담임목사로 취임한다.
   


이처럼 상동교회를 세운 것은 스크랜턴이지만 교회를 성장, 발전시킨 것은 전덕기(1875~1914) 목사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숯장사를 하던 숙부 밑에서 자라던 그는 17세 때 스크랜턴 선교사를 찾아가 심부름꾼으로 있으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신학을 공부하여 1902년 전도사가 됐고 1907년에는 감리교 집사목사 안수를 받아 스크랜턴의 뒤를 이어 제6대 목사이자, 상동교회 최초의 한국인 담임목사가 되었다. 전덕기 목사는 스크랜턴의 민중목회에 감화를 받아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을 위한 목회를 실천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던 남대문시장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방전도에 힘썼으며, 연고자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전덕기 목사는 근대 민족운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교회 안에 상동청년회, 공옥학교 등을 설립하고 이 학교를 본거지로 이시영·김구·주시경 등 독립 운동가들을 결집하여 ‘상동파’를 결성했으며, 1907년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신민회를 결성했다. 또한 전도사 시절 을사보호조약 반대상소를 올린데 이어 헤이그밀사 파견을 논의했다.
   


그러나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석방된 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4년 옥중 고문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다. 당시 남대문시장의 상인은 물론, 기생, 걸인들까지 통곡하며 상여꾼을 자청했으며 그 인파가 10리 밖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유해는 1934년 화장, 한강에 뿌려졌으며 위패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다. 전 목사가 떠난 뒤에도 민족운동은 계속됐다.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33인 중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4명이 상동교회 출신이다.

한편 1944년 일본의 등쌀에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으나, 이후 일제의 패망과 민족상잔의 쓰라림을 딛고 흩어졌던 교인들이 모이고 1959년 23대 박설봉 목사가 담임을 맡으면서 교회 재건에 박차를 가한다. 1976년 현재의 성전을 준공하고 이듬해 학원선교와 사회봉사를 위해 새로나백화점을 개설한다. 1973년에는 삼일재단(삼일중, 삼일실업고교)을 인수하고 1977년에는 서울감리교신학교(현, 협성대학교)를 설립해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또한 현재까지 16개의 지교회를 세웠다. 1998년 IMF 전후로 새로나백화점이 문을 닫은 이후로 건물은 교회와 일반 상가로 쓰고 있다.
   


민중계층을 주요 선교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들이 자립과 독립의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민중선교’의 전통을 수립한 스크랜턴 선교사. 그리고 스크랜턴 선교사가 표방했던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고통 받는 자에게 평안을!’이라는 복음을 따라 하나님과 민족을 사랑했던 전덕기 목사. 이들의 헌신으로 현재 122년의 역사를 이어온 상동교회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요, 많은 인물을 배출하고 건물 수익사업을 통해 학교를 세우고 기독인재를 양성하는 등, 교육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남대문 상인의 친구가 되었던 상동교회가 이천 년 전의 예수, 그리고 100년 전의 전덕기 목사의 뒤를 좇아 앞으로도 민족교회와 민중목회의 정체성을 지속해 나가길 바래본다.


-주소: 서울시 중구 남창동 1번지 (담임 서 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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