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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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미리 사는 봉쇄 수도원....37
3. 왜관 봉쇄 수도원
2019년 11월 13일 (수) 11:11:56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강문호 목사

오후 예배까지 마치고 서울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약간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인 탓에 기독교 울타리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보지 않는 내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자체가 이변이었습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가톨릭 미사에 참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수사들이 두 줄로 입장하여 제대를 향하여 공손히 절을 하고 양쪽으로 갈라져 앉았습니다.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조그만 소리하나 없는 고요 속에 움직였습니다. 누가 조그만 기침만 하여도 온 성당 안을 울릴 정도의 고요함이 흘렀습니다. 기독교 예배와는 전혀 다른 예식 중심 미사였습니다. 하나하나가 새로웠습니다.

이튿날 6시 30분 아침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수도승과 흰 옷을 입은 신부 60여명이 자리하고 청중석에는 약 40명 정도가 자리하였습니다. 역시 가톨릭 예식은 모두 예문 중심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주보이신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시부 성 베네딕토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이런 기도가 생소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봉쇄 지역으로 수도승과 신부님들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들어 갈 수 없는 지역입니다. 물론 부모도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신비였습니다. 나도 거기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특별 부탁을 드렸습니다. 기독교 수도원을 세워야하기에 철저히 모든 것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겠다고 답을 듣고 방문한 상황이었습니다.

100여명 봉쇄 수도사들의 경제를 위하여 여러 가지 수익이 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공소부터 들렀습니다. 다음 견학한 곳은 스텐인 그라스 제조공장이었습니다. 다음에 본 곳은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다음 견학 차례는 분도 출판사였습니다.

수도사들이 예배를 마치고는 각기 자기가 맡은 작업장으로 가서 온 종일 충실하게 일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왜관 베네딕토 봉쇄 수도원은 순교자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죽은 종신 수도사가 50명가량 되었습니다. 땅도, 역사도, 규모도, 건물도 모두 100년의 전통을 통하여 쌓아놓았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쌓아 오면서 이루어진 수도원입니다.

방울토마토, 청국장, 지렁이, 버섯 등 온갖 사업을 다하여 보았습니다. 특별히 지렁이는 대학교수들이 연구대상으로 이용만 당하다가 끝났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쌓아 온 건실한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의 영성이 흘러야 수도원입니다. 수도원 영성은 청빈, 거룩, 순복, 노동 그리고 정주입니다. 예배도 수도이자만 노동도 수도입니다. 왜관 봉쇄 수도원은 자립을 넘어 선교하고, 구제하는 건강한 수도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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