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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두 이름, 레오폴드 2세
2018년 03월 02일 (금) 10:41:24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김홍섭 교수

 

 

역사의 두 이름, 레오폴드 2세

 

 

인구가 많아진 오늘날에는 동명이인이 많다. 역사에도 다양한 동명이인(同名異人)들이 존재해 왔다. 레오폴트 2세 (Leopold II)는 대표적인 동명이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레오폴트 2세(1747~1792)는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1790~92 재위)로 계몽군주로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합스부르크가(家)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황제 프란츠 1세 사이에 태어난 셋째 아들로, 1765년 형이 요제프 2세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토스카나 대공이 되었다. 형 요제프처럼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그는 봉건적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더라도 효율적인 국가기구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25년간 토스카나 공국을 통치하면서 국세와 관세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했고 의회제도를 발전시켰다.

1790년 2월 요제프 2세가 죽은 뒤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어 중앙집권화한 국가기구의 일부분을 철폐했고, 농민들을 해방시키고 비(非)가톨릭교도들에게 더 많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요제프의 법령들을 지켜나갔다. 그는 프랑스 혁명으로 생긴 격동적인 상황에 대해 처음에는 신중하게 대응했으나 1791년 8월에 프로이센과 함께 유럽 군주들에게 프랑스의 왕정 유지를 위해 무력 사용을 호소하는 필니츠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의 레오폴트 2세(1835~1909)는 벨기에 국왕으로 아프리카 콩고 분지를 개발하여 1885년 콩고 자유국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1908년 이 나라는 벨기에령 콩고(지금의 콩고 민주공화국)로 합병되었다.

그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1세와 그 둘째 부인 오를레앙의 마리 루이즈 사이에 태어난 장자로, 1865년 12월 부왕이 죽자 벨기에 왕(재위,1865~1909)이 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콩고 지역 개발에 참여해 헨리 모턴 스탠리 경을 앞세워 콩고를 탐험하기 위해 1876년 콩고 국제협회란 임의 지주회사를 창설했다. 1884~85년에 콩고 분지를 차지하려는 영국과 포르투갈의 연합세력을 몰아내고 미국과 유럽 열강들에게서 벨기에보다 약 80배나 큰 콩고 자유국을 자신의 사유지로 승인받았다. 1876년 지주회사인 콩고국제협회를 통해 개발과 착취를 강행했다. 그는 여러 외교적 작전을 통해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14개 유럽 국가들과 미국들로부터 콩고의 합법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1885년 2월 5일, 그는 마침내 콩고 자유국을 창립하고 그 나라의 지배자가 되었고 사병을 통해 다스렸다.

이 식민지에서의 최초의 착취의 대상은 상아였으나 예상한 만큼의 이익을 내지 못하자 고무로 바꾸었다. 고무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고무나무로부터 수액을 추출하는데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였다. 그는 1890년대 후반부터 베를린 회의에서의 약속을 어기고 콩고에서 외국에서의 접근을 차단하고 토착인들을 강제노동자로 만들었다. 그는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경우 토착 흑인들의 팔 등 신체를 절단하도록 하는 잔인한 방법을 통해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의 악행은 결국 해외에, 특히 선교사들을 통해 알려지고 비난받게 되었다.

그의 잔혹한 통치방식과 착취에 대한 비난, 그리고 인권에 대한 요구로 콩고를 그의 손에서 해방시킬 것이 세계각지에서 요구되었다. 결국 벨기에 의회는 1908년 그의 콩고 자유국 통치를 멈추도록 결의했고, 콩고는 벨기에령 콩고로서 개인 사유지에서 벨기에의 식민지가 되었다.

주요 산업인 천연고무 생산으로 1891년부터 수입을 올려 많은 이익과 돈을 벌어들였으며 그 돈으로 벨기에에 다양한 건축물을 건설하였다. 레오폴트 2세는 무자비하게 원주민을 노예처럼 착취하였다. 1904년 고무산업에 종사하는 원주민들을 학대한 사실이 폭로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개인 통치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국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레오폴드 II세의 '고무노동자 학대'를 뿌리뽑기 위해 콩고 자유국을 합병하라고 벨기에 정부에 압력을 넣었고, 결국 1908년 11월 콩고 자유국은 벨기에에 합병되었다.

인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학살을 비판하고 그를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저주하기 까지한다. 히틀러는 유대인 60만~600만을 학살한 것으로 인류사의 죄인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벨기에의 왕 레오폴트 2세는 아프리카에서 흑인 100만~1500만을 학살하고 신체를 절단하는 등 인류사에 최악의 학살자로 평가된다.

역사는 그것을 모르거나 잊는 자에게 되풀이 된다. 역사의 죄악을 분명히 기억하고 비판하고 후대에 교육하는 자에게 역사는 조금씩 진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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