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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은 선교에 관한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전략(행8:1-8)
2017년 12월 28일 (목) 10:15:01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전략(행8:1-8)

- 사도행전은 선교에 관한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이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탄생과 확장, 직분의 기원, 이단의 출현, 그리고 복음의 발전과 성장, 곧 선교운동의 기원과 발전, 선교의 정책 등 선교에 관한 중요한 지침을 주는 책이다. 이런 점에서 선교에 관한 가장 지침을 주는 책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에서 가장 우선하는 전략은 하나님(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고난과 박해까지도 감수하는 것이다.

1) 선교거점(Mission station)의 확보: 안디옥교회의 창설은 바울의 3차례의 선교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루살렘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최초의 이방교회로서 복음의 전초기지였다. 로마제국내의 제3의 도시로서 전 세계의 문물이 교류되는 교착지였던 안디옥은 고대의 상업 중심지였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의 어머니 교회라면, 안디옥교회는 이방세계에 복음의 빛을 비추었던 이방의 어머니 교회였다. 바울에게 있어서 안디옥은 선교본부로서 그의 선교의 중요한 전진기지가 된 것이다. 또한 로마 세계의 관문이었던 안디옥이 전진기지로 사용된 점도 특이할 일이다.

2)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바울은 로마제국의 중요한 행정적 속주였던 4개 지방- 곧 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 지방에서 집중 선교했다. 제국내의 주요 도시를 집중 선교하여 그곳을 또 하나의 선교거점(mission station)으로 삼아 근접한 지역을 차례로 복음화해가는 전략이었다.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들은 로마행정의 중심지이거나 헬라문명의 중심지로서 복음화를 위한 전략적 도시들이었다.

3) 회당중심의 선교: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으나(갈2:8) “첫째는 유대인에게요”(롬1:16)라고 한 그의 말처럼 유대인에게 먼저 나아갔다. 그는 우선 회당을 복음 증거의 거점으로 사용했는데, 살라미 회당(행13:5), 바시디아 안디옥 회당(행13:14), 이고니온 회당(행14:1), 빌립보 회당(기도처)을 찾았으나 찾지 못함(행16:11-13), 데살로니가 회당(행17:1), 베뢰아 회당(행17:10), 아덴 회당(행17:17), 고린도 회당(행18:4), 에베소 회당(행18:19) 등이 그것이다. 바울이 회당을 거점으로 삼은 이유는 회당에서 메시야의 오심과 사역에 관한 구약예언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제국 내의 유대인 인구는 7-10%였는데, 회당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개종자, 하나님을 두려워한 경건한 이방인 등 3종류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당 선교가 불가능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행18:7, 19:9등). 회당은 바울선교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4) 팀 선교(Team Mission):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때는 바나바와 마가와 함께 했고, 제2차 전도여행 때는 실라와 디모데(루스드라에서 동행) 누가(드로아에서 동행)와 함께 했고, 제3차 전도여행 때는 누가, 디모데, 아볼로 등이 함께 했다. 또 다른 동역자들로는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브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행20:4) 등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에바브라, 데마, 에바브라디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등이 바울의 동역자로 팀선교의 조력자들이었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초대 기독교 복음 확장사에서 전기한 인물 외에도 익명의 충성된 전도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행8:4). 1세기 말엽 이후, 특히 2세기 이후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중심지였던 로마, 알렉산드리아 등지에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가 누구였던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고전9:19-23): 복음의 본질은 천사라도 변질시킬 수 없으나(갈1:6-9) 바울의 증거의 형식은 다양했다. 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처신하며 증거했다(고전9:19-23). 이것은 토착화(Indigenization) 원리가 아니라 동일화(Idenfication) 원리이다. 바울은 풍속문제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푼 것이나(행16:3), 서원(誓願)을 하여 머리를 깍은 일(행18:18)이 그 예이다. 할례나 결례(潔禮)로서의 머리 깎음은 율법에 속하여 더 이상 시행될 필요가 없었으나, 유대인의 오랜 습관이었기에 잠시 이를 수용한 것이다. 그의 설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항상 청중들의 필요에 따라 메시지를 전했고, 설교의 대상에 따라 각기 그 접근과 내용을 달리했다. 그러나 그가 설교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동일한 것이었다. 예로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 청중에게 설교했던 내용인 사도행전 13장 6-41절과, 아덴에서 헬라인과 헬라철학자들을 상대로 설교했던 사도행전 17장 21-31의 두 본문을 비교해 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6) 양육을 통한 내적 성장: 바울은 방문을 통한 양육(행15:36,41:18.23)), 사역자 파송을 통한 양육이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직접 방문할 수 없었을 때는 그의 동역자를 대신 파송하였다.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 디모데를 고린도에 파송한 일이나, 데살로니가에 디모데를 파송한 경우가 그것이다. 서신을 통한 양육(13개서신), 기도를 통한 양육(엡3:14-19,빌:1:9,10 골1:9-12)이었다. 이러한 양육방법은 단계적이기 보다는 동시적으로 수행되었다. 바울은 특히 제자훈련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에베소에 체류했던 3년 중 2년간은 두란노서원에서 집중적인 제자훈련을 실시했다. 이곳에서의 2년간의 제자 양육을 통해 에베소 교회가 아시아의 중심교회가 되었고, 인근지역(골로새 등)에 복음이 확장되고, 계시록에 나오는 6개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7) 자급선교 (Tent-making mission): 바울과 그 일행들의 선교는 기본적으로 자급선교였다. 바울은 이 점을 여러 번 표명하였는데(행20:33-35), 일하는 소에게 올무를 씌우지 말라 함으로 사역자에 대한 후원은 정당하고 사례금을 받는 것은 정당하지만 바울 자신은 직업을 통해 사역을 계속했다. 그의 사역은 전문인 선교의 시원이 되며, 동시에 그의 자급선교는 현대의 네비우스선교(Nevius Method) 원리의 정신적 연원이 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 정책은 오늘 우리도 교회에 따라 잘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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