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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배신
2017년 12월 13일 (수) 11:17:47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진실과 배신

인류역사는 진실을 찾는 긴 탐구와 투쟁과 협상의 역사다. 진실은 스스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빛은 스스로 빛나며 어둠을 몰아낸다. 그러나 빛도 벽이나 어두운 천으로 막으면 제한된 범위에서만 빛을 발하고 널리 퍼지지 못하고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진실은 그 자체의 의미와 숭엄함과 가치를 스스로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러나 오랜 비진실의 시간과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오히려 역사에서 더 자주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그런 진실과 진실의 누적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진리는 스스로 빛을 발하고 주위도 밝게 또는 자유를 가져다준다. 진리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신뢰하여 행동에 옮겨질 것이 전제되기도 한다. 여기서 진리란 파당과 특정 지역이나 집단, 세력에 국한되는 진리가 아닌 보편타당하여 인류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치로서 진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배신이나 고발은 좋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여기서의 배신이란 참되고 가치 있는 어떤 존재나 사상(事狀)에 대하여 배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 함께한 조직이나 친지를 배반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배신이라 하지만, 반면에 거짓되며 정의롭지 않는 조직이나 친지를 고발하는 것을 같은 의미로 배신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한 용어사용이라 보기 힘들다. 이는 양심고백이나 사회적 고발 등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배신의 아이콘’으로 성경 속의 가롯 유다를 들 수 있다. 그는 은 30량에 스승 예수를 팔아넘긴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닭이 울 때 통한의 눈물을 흘리던 베드로도 스승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배신했다. 단테는 자신의 <신곡>에서 배신자들을 가장 잔인한 지옥에 가둬 거꾸로 세운 원뿔 모양의 지옥에서 맨 밑바닥으로 던졌다. 동생을 살해한 카인,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가 그곳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사회는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성공적인 국가로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명암이 공존기도 한다. 지금의 우리 문제들의 근저를 형성하는 요인들은 여타 다른 국가나 사회에도 온존하고 있음에도 사회는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과옥조로 여기던 가치들이 변하고 있다. 가부장제나 여성에 대한 억압은 패퇴되거나 해소되었다. 물론 일부국가와 이슬람권에서의 여성인권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기도 하다. 미국과 남아공에서의 흑백 갈등은 많은 갈등과 피의 투쟁으로 제거되었거나 해결되고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 있던 반상의 차별, 직업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칠거지악’이나 등은 사라졌다. 당시에 그런 사회구조에 반하는 사람들은 사문난적(斯文亂賊)이거나 시대의 배신자로 엄한 벌을 받았다. 종교가 지배한 사회에서 다른 생각과 종교를 갖는 것은 배신으로 화형을 당하거나 돌로 쳐 죽임을 당했다.

오늘날은 개인과 파당의 가치보다 인간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가치가 강조된다. 간통죄는 배우자의 외도를 범죄로 취급해 엄벌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사형이나 외모를 손상시키는 벌을 내리도 한 명백한 배신 행위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자유주의 국가에서 성 중심의 도덕이 일반 도덕으로 전화되면서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간통죄가 남녀간 사랑의 문제인지 법으로 처단해야 할 국가적 문제인지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종교의 문제에서 배교도 자유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일부 국가에서는 사형을 내리기도 하는 중죄이나,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과 자유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종교나 신앙을 바꿀 권리는 기본적 인권으로 명시돼 있다.

 

역사는 말해준다.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권력이나 금권에 의해 제한되고 감춰진 사건과 행위들이 한 때 감춰질 수 있으나 영원히 사라질 수 없으며, 그런 비진리와 부정과 불공정에 근거한 힘과 재물은 언젠가 무너질 걸이다. 물론 그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요구하게 되겠지만. 한나 아렌트(H. Arendt, 1906~1975)의 인간의 ‘악의 평범성’은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고 일상화 될 수 있다. 정의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하지 않는 어떤 힘과 권력이 쌓은 틀과 구조는, 히틀러 경우처럼 정당하지 않은 뿐만 아니라, 악하며 소수 집단을 위한 범죄적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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