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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치는 교육이 절실하다
2017년 09월 21일 (목) 09:27:22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치는 교육이 절실하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 길에다 돌도 많은 험한 길입니다. 더욱이 그 길로 여행하던 사람들이 도둑떼나 강도들에게 피해를 입는 일이 자주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길로 여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은 바로 이 길로 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그가 거의 죽게 된 체로 길에 버려져 있을 때, 그 길을 지나치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다쳐서 움직이지 못했을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둘러 그를 지나쳐 버렸습니다. 어려운 백성들을 돌아볼 책임이 있었을,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졌던 사람이었는데도 외진 곳에 버려진 사람을 보고도 모른척하며 그들이 서둘러 지나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제사장이 얼핏 보았을 때, 피 흐르는 체로 버려진 그 사람의 모습이 죽은 사람처럼 보였기에, 제사장에게 주어졌던 율법의 말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라” (레위기 21장1-3절)를 기억해 내고는 다가가서 살펴볼 마음조차 갖지 않고 빨리 그 자리를 피해 갔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그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자신들이 우범지역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불편했는데, 이미 그 지역에서 공격받은 사람을 보자, 자신들 안에 있었던 두려움이 극대화 되어 자신들만 살겠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간 그 지역을 지났던 사마리아인은 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고, 서둘러 그 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쓰러진 사람을 돌보는 일로 그 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지체되는 것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죽은 자를 만짐으로 자신이 더러워 질까 두려워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당시 이 사마리아인에게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가졌던 권세나 명예, 지도계급이 누렸던 기득권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사마리아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받았던 차별과 무시가 늘 그의 뒤를 따라 다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강도 만난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의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높고 귀하다고 여겼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순간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앞섰던 사마리아인은 쓰러져 있는 사람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를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 소식은 중학생들의 폭행이야기입니다. 부산, 강릉, 천안, 인천, 등등 거의 매일, 여러 곳에서 일어난 중학생들의 폭행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은 듣는 이를 경악하게 만들고,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흔히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기에 실수하기 쉽고, 친구들의 모습이 자신들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누구를 만나는 지, 어떤 일들을 배우고 생각하는 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같은 반의 친구가 경쟁의 대상이고, 그를 이겨야 내가 생존할 수 있고, 대학도 갈수 있다고 가르치는 현실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기록에 의하면, ‘로제타 홀’은 병약한 소녀였습니다. 어린 시절 척추에 이상이 있어 몇 차례 수술을 받았고, 20대가 될 때까지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의과대학에 다닐 때에는 목에 결핵성 종양 때문에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의사로서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작정했을 때는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녀를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모든 것들을 이기고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조선의 여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녀 안에 있었던 환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전해주는 기록이 있습니다.

“16세인 그 젊은 여성 환자는 수년 전 화상으로 세 손가락이 붙어 손바닥 쪽으로 굽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킨 뒤 마취를 하고 손가락을 분리해 각각 붕대로 감았습니다. 그리고 똑바로 펴서 부목을 대 주었습니다. 나는 절개한 피부로 최대한 이식하려 노력했지만 아직 피부가 없는 부위가 남아 있었고 말이 잘 안 통했기 때문에 피부이식의 필요성을 환자에게 이해 시킬 수 없었습니다. 나는 몇 조각의 피부 이식 편을 내 몸에서 떼어냈습니다. 다음으로는 환자로부터도 몇 조각을 떼어내야 했습니다……”

자신의 피부까지 떼어 환자를 치료했던 그녀의 모습을 청소년들이 배울 수 있도록, 배움의 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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