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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병원, 시대를 앞질렀던 인천의 의료 역사
2017년 09월 14일 (목) 18:04:18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어린이 병원, 시대를 앞질렀던 인천의 의료 역사

최근 몇 년 TV 방송에서 라오스가 여행지로 소개된 후, 라오스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졌다 합니다. 그 곳이 미지를 여행자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신분을 감추고 마음 졸이며 사역을 해야 하는 땅이 라오스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한국을 여행 중이었던 “Vientiane Ballet Center” 학생들과 총무님이, 신장 결석으로 인해 신장염을 앓고 있는 한 학생의 치료를 위해 인천기독병원에 왔습니다. 오전 내내 치료 받으며 좋아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며, 인천 근대 의료 역사에 꼭 기려야 할 인물이었던 “로제타 홀”이 우리 땅에 와서 ‘부인과 아이들’을 치료했던 일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당시 “로제타 홀”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는 책 『한국 감리교 여성사 (1885-1945), 장병욱』은 그녀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처음 시작은 1921년 Dr R.S. Hall이 인천시의 한 가운데 있는 어느 낡은 한식 여관을 사들여서 한 것이 시초였다. 이것은 그 때 처음으로 두 명의 한국인 여의사들을 기용하고 그 이름을 제물포여자 시료서(The Chemulpo Women’s Dispensary)라고 이름하였다.

그 후 점점 발전하여 1930년에 들어 와서는 아주 일반화 되었으며, 1937년에는 12,334명의 환자들이 치료받는 대 병원으로 되어 시는 물론 지역주변의 건강과 위생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여선교회에서는 치료하는 동안 복음을 설교하고 기타 여성을 위한 청결 및 건강 강습을 하여 지역 주민의 보건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제물포에서는 또한 Baby Clinic이 11명의 어린아이들을 가지고 1924년 봄부터 문을 열었다. 1938년에는 300명이 등록되었으며, 이것으로 인해서 어머니들은 어린이의 건강과 청결의 개념은 물론 어떻게 하면 더 잘 기를 수 있을가 하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영아원의 모습에 대해서 마거리트 헤스양은 말하기를 ‘영아원의 속을 들여다 보면 마치 만조시의 수면에 비친 푸른 하늘과 꽃으로 뒤덮인 언덕길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환언하면 천사 같은 어린 아이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신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던 때문이다.

나중에 이곳은 더욱 발전해서 학교 어린이를 위하여도 내방되었으며 동시에 그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도 겸하였다. 이를 위해서 Miss Kostrup이 수고 하였다.

 제물포시의 이 의료사업은 날이 감에 따라서 번창해 갔고 자연 구 건물은 비좁아 환자들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어려워 졌다. 많은 기도가 결실이 되어 다행이 기금이 미국의 의료 사업회로부터 기부되어, 1931년에 Kostrup은 입원실을 갖춘 새로운 병원을 질 수 있게 되었다.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사업도 더욱 활발해 졌다. Kostrup외에 두 명의 여의사, 두 명의 간호원, 한 명의 전도부인, 한 명의 잡부를 더 기용하여 병원사업을 크게 확장되었다. 여기서 전도부인의 역할은 병원 대기실에서 개별적인 활동을 하는 한편, 만일 환자들이 가정에서 요구하면 환자와 가정을 방문하여 예배도 보아주고 기도도 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제물포 지역에 있어서 의료 및 교육 사업은 일찍부터 지역사회는 물론 그곳 주민들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 주었다.

끝으로 “어린이 병원”은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종전에 한국에서의 어린이 위치는 성인 사회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으며, 아울러 유교사회는 무조건 아이들이라면 복종의 대상이 아니면 순전히 어른 사회의 공기 역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서나 어른은 아이들이라면 깔보고 업신여기었고, 어린이가 장래에 국가와 사회의 희망이라는 사실 조차도 부인할 정도였다. 이런 사회적 인식의 위치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또는 국가적인 배려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교회는 이런 관념을 깨쳐버렸다.

 그들은 어린이를 귀히 여기고 그들을 위한 복지 기관으로서 영아원을 시작했고 이를 위한 깊은 관심과 배려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 여선교회는 시대를 앞지른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으로 가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했던 한 사람 ”로제타 홀”의 헌신이 이 땅의 수 많은 여성과 어린 생명들을 살렸습니다. 부인병원만 아니라 “어린이 병원”도 인천에 있었다는 기록이 놀랍고, 이러한 생각들과 관심은 우리가 더 계승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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