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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료사 100년을 기리는 기념관이 필요하다
2017년 09월 07일 (목) 15:04:51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근대 의료사 100년을 기리는 기념관이 필요하다

 

인천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의료 선교사로서 우리나라 의료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 중의 한 분이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입니다. 그녀는 뉴욕 설리번 카운티 출신으로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녀가 학생이었던 어느 주일 날, 의료선교의 중요함을 설명하는 여선교사의 사역보고를 듣고 감동하여 자신도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합니다.

당시 서울에는 스크랜튼의 요청을 받아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가 파송했던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가 시작한 여성 전문병원 ‘보구녀관(保救女館)’이 있었습니다. 하워드는 한국에 1887년 10월에 도착했는데, 그 해에만도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하워드는 1889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메타 하워드’ 후임으로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는 ‘로제타 홀’을 한국으로 파송 하였습니다.  

당시 25살의 처녀였던 ‘로제타 홀’이 제물포항에 도착한 날은 1890년 10월 13일이었고, 서울 도착은 10월 14일이었으며, 그 다음날부터 그녀는 진료를 시작합니다. 로제타는 환자의 맥박과 체온을 재고, 진찰을 한 후, 약을 조제했고, 또 수술 등의 모든 일들을 혼자서 했습니다. 또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정신과 등의 온갖 질병들과 씨름하였습니다. 그녀가 했던 수술도 자궁수술을 비롯해 종양 제거, 백내장 수술, 언청이 수술, 종기 수술 등 이었습니다. 첫 10개월 동안 2359건의 진료를 했고, 왕진이 82건, 입원환자는 35명, 처방전 발행건수는 6000여 건이었습니다.

후에 로제타의 남편이 된 ‘윌리엄 제임스 홀’도 의료 선교사의 소명을 가지고 의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1891년 12월 13일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이듬해 3월부터 성경을 팔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관서지방을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1892년 9월부터는 평양 선교 담당자가 되어 평양에서 환자들을 진료하였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 홀’의 사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청일전쟁의 발발로 평양이 치열한 전쟁터가 되자, 그는 밀려드는 전쟁 부상병들을 치료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게 되었고, 이질까지 걸려 서울로 이송되어 치료받던 중에 1894년 11월 24일 소천했기 때문입니다.

남편 사후 로제타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을 사랑했던 그녀는 친지, 동료, 독지가의 도움으로 마련한 기금을 평양에 보내 홀을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개원하게 하였고,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보구녀관’에서 진료 하다가 평양으로 파송되어 ‘광혜여원’을 설립,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진료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남편 월리엄 제임스 홀과 그의 가족이 한국인을 섬긴 일을 기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고, 그녀가 한국 근대의료 발전을 위해 수고한 흔적들을 간직한 병원이 있는데, ‘로제타 홀’이 한국 사람들을 치료했던 흔적을 담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사는 인천입니다.

인천의 의료 발전을 위해 수고한 로제타 홀의 남아 있는 기록들을 보면, <동아일보> 1921년 7월 4일자 3면에, 『인천에도 녀의원(女醫院), 미국부인전도사업, 명일부터 진찰개시』란 제목을 가진 기사가 있습니다. 기사를 보면, ”미국부인 전도회에서는 일즉이 녀의를 조선에 파견하여 평양에는 광혜녀원(廣惠女院), 경성에 동대문 부인병원을 세워 일반 부인환자를 치료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인천 율목리 237번지에 부인병원을 신설하고 명일부터 진찰을 할 터인데 녀의계에 유명한 ‘홀’ 부인이 감독이 되고 조선녀자 의사 두 명이 보조 하리라더라.”

또한 1928년 간행된 한국선교연보(The Korea Missions Book)의 43쪽은 “1921년 ‘홀’ 박사가 제물포의 부녀자들을 위한 의료 사업이 절실히 필요함에 따라 한국식 여관을 사서 부녀자 의료소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로제타 홀은 한국의 모든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녀의 흔적이 남은 곳이 인천기독병원이고 그녀의 숭고한 이타적인 사랑의 정신을 기리며 오늘도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 인천기독병원입니다. 2021년이 되면, 인천 근대의료 100년입니다. ‘로제타 홀’이 보여준 정신을 더 많이 알리고 계승할 수 있는 의료 박물관, 근대 의료 100년을 발전시킬 박물관이 우리 인천에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인천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의료 선교사로서 우리나라 의료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 중의 한 분이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입니다. 그녀는 뉴욕 설리번 카운티 출신으로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녀가 학생이었던 어느 주일 날, 의료선교의 중요함을 설명하는 여선교사의 사역보고를 듣고 감동하여 자신도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합니다.

당시 서울에는 스크랜튼의 요청을 받아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가 파송했던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가 시작한 여성 전문병원 ‘보구녀관(保救女館)’이 있었습니다. 하워드는 한국에 1887년 10월에 도착했는데, 그 해에만도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할 정도로 과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하워드는 1889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메타 하워드’ 후임으로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는 ‘로제타 홀’을 한국으로 파송 하였습니다.  

당시 25살의 처녀였던 ‘로제타 홀’이 제물포항에 도착한 날은 1890년 10월 13일이었고, 서울 도착은 10월 14일이었으며, 그 다음날부터 그녀는 진료를 시작합니다. 로제타는 환자의 맥박과 체온을 재고, 진찰을 한 후, 약을 조제했고, 또 수술 등의 모든 일들을 혼자서 했습니다. 또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정신과 등의 온갖 질병들과 씨름하였습니다. 그녀가 했던 수술도 자궁수술을 비롯해 종양 제거, 백내장 수술, 언청이 수술, 종기 수술 등 이었습니다. 첫 10개월 동안 2359건의 진료를 했고, 왕진이 82건, 입원환자는 35명, 처방전 발행건수는 6000여 건이었습니다.

후에 로제타의 남편이 된 ‘윌리엄 제임스 홀’도 의료 선교사의 소명을 가지고 의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1891년 12월 13일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이듬해 3월부터 성경을 팔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관서지방을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1892년 9월부터는 평양 선교 담당자가 되어 평양에서 환자들을 진료하였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 홀’의 사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청일전쟁의 발발로 평양이 치열한 전쟁터가 되자, 그는 밀려드는 전쟁 부상병들을 치료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게 되었고, 이질까지 걸려 서울로 이송되어 치료받던 중에 1894년 11월 24일 소천했기 때문입니다.

남편 사후 로제타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을 사랑했던 그녀는 친지, 동료, 독지가의 도움으로 마련한 기금을 평양에 보내 홀을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개원하게 하였고, 18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보구녀관’에서 진료 하다가 평양으로 파송되어 ‘광혜여원’을 설립,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진료를 하였습니다.   

오늘도 남편 월리엄 제임스 홀과 그의 가족이 한국인을 섬긴 일을 기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고, 그녀가 한국 근대의료 발전을 위해 수고한 흔적들을 간직한 병원이 있는데, ‘로제타 홀’이 한국 사람들을 치료했던 흔적을 담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사는 인천입니다.

인천의 의료 발전을 위해 수고한 로제타 홀의 남아 있는 기록들을 보면, <동아일보> 1921년 7월 4일자 3면에, 『인천에도 녀의원(女醫院), 미국부인전도사업, 명일부터 진찰개시』란 제목을 가진 기사가 있습니다. 기사를 보면, ”미국부인 전도회에서는 일즉이 녀의를 조선에 파견하여 평양에는 광혜녀원(廣惠女院), 경성에 동대문 부인병원을 세워 일반 부인환자를 치료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인천 율목리 237번지에 부인병원을 신설하고 명일부터 진찰을 할 터인데 녀의계에 유명한 ‘홀’ 부인이 감독이 되고 조선녀자 의사 두 명이 보조 하리라더라.”

또한 1928년 간행된 한국선교연보(The Korea Missions Book)의 43쪽은 “1921년 ‘홀’ 박사가 제물포의 부녀자들을 위한 의료 사업이 절실히 필요함에 따라 한국식 여관을 사서 부녀자 의료소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로제타 홀은 한국의 모든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교사였습니다. 그녀의 흔적이 남은 곳이 인천기독병원이고 그녀의 숭고한 이타적인 사랑의 정신을 기리며 오늘도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 인천기독병원입니다. 2021년이 되면, 인천 근대의료 100년입니다. ‘로제타 홀’이 보여준 정신을 더 많이 알리고 계승할 수 있는 의료 박물관, 근대 의료 100년을 발전시킬 박물관이 우리 인천에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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