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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 대표적 지역 상인
2017년 06월 21일 (수) 12:29:14 연합기독뉴스 webmaster@ycnnews.co.kr

개성상인, 대표적 지역 상인

 

 

김홍섭 교수

 

조선시대와 이후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상인집단들이 활동하여왔다. 서울인 한양을 중심으로 한 경강(京江, 京商 ,서울상인), 개성중심의 송상(松商), 의주중심의 상인인 만상(灣商)그리고 평양상인, 동래상인 그리고 지방거점의 강진 병영상인 들이 각자의 배경과 특색을 갖고 활발히 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 상인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조사와 연구가 있다.

개성상인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개성을 중심으로 활동한 상인으로 송악근처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활약하던 배경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상인으로 개성상인을 들 수 있으며, 개성상인은 송악(松岳)산을 둔 송악이란 이름에서 연유한 송상(松商)으로도 불리워졌다. 개성상인은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개항기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데는 홍삼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도 크고 중요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한 기민한 대응능력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성상인은 시전인(市廛人)과 사상(私商)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시전인은 국내 상거래와 송나라등 되국과의 교역도 진행하였다. 이들은 정부에 일정한 부담을 지는 대신에 금난전권(禁難廛權)과 같은 특권을 부여 받았다. 반면에 사상들은 조선 후기 상업의 요충지를 연락하는 광범위한 조직으로 송방(松房)이란 지점을 통해 전국의 상품을 거래할 수 있었다.

1894년 1월 중부지방 商況을 보고한 일본인 시찰자는 개성․ 개성상인에 대해 ‘외국무역 개시 이래 인천 시장에 접근하였기 때문에 외국 제품을 바로 인천에서 구입하여 각 지방에 공급하고 그리고 각 지방에서 매집한 곡물 기타를 인천으로 운송함을 중요한 상업으로 하였다. 때문에 이곳 상업의 번성은 極에 달하였다’.고 쓰고 있다. 특히 개성상인은 당시에는 독자적인 회계처리 기법을 사용하여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즉 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이란 독자적인 회계 및 부기 처리 방번을 개발하여 사용하였다. 개성상인사이에서 널리 사용된 사개치부법은 복식부기와 유사한 것으로 서양복식부기의 원조인 이탈리아 상인의 것보다 거슬러 올라간다.

개성상인은 개항전까지 국내 최대 규모으 토착자본으로 성장하였으며, 송방(松房)이란 전국에 산재한 조직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전국의 상업망을 연결하고 각 지역에 상업기구를 설치,운영하였다. 송방는 조선이 정책적으로 상업을 억압하는 정책을 유지해와 어쩔 수 없는 상인들의 자생적인 조직이었다.

의주상인은 조선의 서북부의 의주(義州)를 중심으로 한 상인조직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으로 많은 교류가 가능했던 의주에서 중국과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의 조직을 일컬으며, 주로 만상(灣商)이라 하며, 유만(柳灣) 또는 만고(灣賈)라고도 불렸다.

의주는 국경 도시로서 조선시대 사신들의 여행경로이며 많은 사람들과 물자가 교류되었다. 의주는 정치·외교상은 물론 양국 간의 무역 중심지로서도 중시되었던 곳이다. 조선 후기 상업계의 발달과 금속 화폐의 전국적 유통으로 17세기부터 국내는 물론 국제 교역이 활발하였다. 대외 무역의 경우은 주로 청(淸)국과의 무역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부연사행(敷衍使行)에 따라 진행되었다. 부연사행이란 조명(朝明) 또는 조청(朝淸) 양국간의 외교행위를 맞고 있는 사신(使臣)의 행차인 사행(使行)의 왕래에 부수하여 양국의 상인인 연고(燕賈 : 북경상인)와 만상(灣商)이 중계무역 등의 형태로 띠고 조선과 명, 청간의 무역이 유지, 발달하였다.

조선 후기 정조(正祖) 말년에는 사행정사(使行正市)가 의주 부윤(府尹)과 상의해서 연행상금절목(燕行商禁節目)을 합의·작성하여 이를 기준으로 만상의 무역을 감독케 하였으며, 이와 같은 정책 무역권을 만포(灣包)라고도 하였다. 이는 정부가 의주 상인을 통해 출입 물품에 대한 관세를 하여 국가 수입을 증대시키려는 목적이 작용한 것이었다.

만상은 대청 무역에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개성상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국내외 시장을 연결하고 있었으며, 또한 이를 통해 대일본 무역의 일선상인인 동래상인과도 연결되어 개성상인과 국제 중계무역을 가능케 하였다.

이런 개성상인의 전통은 후에 태평양화학, 신도리코, 에이스침대 등의 기업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양에서와 달리 서양이나 중동에서 상인은 중요한 직업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었다. 성경에도 상인에 대한 다양한 구절들이 나온다. 귀한 것을 찾아 확보하고 높은 가격에 거래하는 것이 상인의 높은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 (마13:45-46) 우리도 우리 인생이란 긴 사업과 상행위를 잘 관리하는 선한 청지기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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