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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 어르신들께서 제게 주신 것
자원봉사 후기 -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2009년 06월 25일 (목) 17:50:17 임성숙 webmaster@ycnnews.co.kr

지난 2월말부터 복지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르신들의 삶을 박사논문의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제가 어르신들을 가까이서 뵙게 된 것은 비록 두 달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느꼈고, 지금도 어르신들로부터 계속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복지관을 찾기 전에는 어르신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저의 두 가지 경험 덕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더 친숙해 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첫째는 작년 여름 한 달 동안 사할린에 머물렀던 경험입니다. 처음 먹어본 러시아 음식, 낯선 러시아 습관을 비롯하여 제가 사할린에서 살아 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말씀해드렸더니, 반갑고 기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며 당신들께서 사할린에서 살아 온 이야기를 하나하나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조신인 3세라는 제 삶의 배경은 어르신들에게 일본말이나 일본에서의 생활, 그리고 일제시대를 견뎌 온 당신들의 인생을 새삼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먹고 살기위해 나고 자란 고향집을 떠나 배를 타고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다시 기차를 타고 오사카, 도쿄, 아오모리로 그리고 훗카이도에서 사할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면서, ‘조금은 돈을 벌 수 있겠지’라는 작은 희망과 함께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기억. 사할린 탄광에서 사고를 당하여 혹은 가혹한 강제노동으로 병에 시달려 아버지를 잃거나, 아버지가 일본으로 이중징용을 당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아야 했던 시절. “조선인”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부도 일도 단념해야만 했던 억울함. 해방 후에는 사할린 남쪽이 소련 땅이 되어 난생 처음 보는 ‘코큰 노랑머리’사람들, 새로운 법률, 낯선 말과 풍습을 익혀야 했던 어려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러 가지 삶의 역경과 고난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인생을 결코 슬픔과 고난이라는 말로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조선인”을 바보라고 놀리는 일본 아이들과 당차게 싸움을 한다거나, 함께 살던 일본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던 일, 그리고 옛날에 자주 먹던 일본식 조림(츠쿠다니)반찬이나 유부초밥의 맛, 어렸을 때 불렀던 일본 노래와 같은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자라난 자식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고달픈 사할린에서의 삶에 커다란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어르신들의 이러한 인생의 경험을 단지 일제시대나 소련시절의 “과거”로만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들이 당신들의 오늘날의 삶에도 계속해서 이어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어르신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0~5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사할린 땅을 떠나 영주귀국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고심에 고심을 더 한 끝에 내린 고뇌에 찬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날로 쇠약해 가는 몸을 이끌고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단일 것입니다. 심지어는 지금도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았을까 고민하는 분도 계십니다.

저는 새삼 할머니, 할아버지 한분 한분께서 살아오신 삶의 무게를 생각하고 느끼면서, 앞으로 어떻게 어르신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노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브리티시 칼럼비아 대학교 인류학교 박사과정  임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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