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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우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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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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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과 우리 시대

이 시대는 아픔의 시대다. 어느 시대고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픔의 저편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도 없지 않다. 이 시대의 아픔은 절대적 부족과 결핍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아픔은 존재론적이고 관계적이고 시대적인 것이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체험을 토로한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호(César Abraham Vallejo Mendoza,1892~1938)는 자신의 아픔을 표면적으로 바로 나타내지 않고 존재론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로도, 인간으로도, 살아 있는 존재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카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로도 겪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고통스러워할 뿐입니다. 내가 세사르 바예호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이며, 인간이 아니었다 해도,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해도 이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카톨릭 신자, 이슬람교도,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해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지 고통을 겪을 뿐입니다.

지금 나는 이유 없이 아픕니다. 나의 아픔은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그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원인이 되다 그만둔 그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아무것도 그 원인이 아닙니다만 어느 것도 원인이 아닌 것 또한 없습니다. 왜 이 아픔은 저절로 생겨난 걸까요? 내 아픔은 북녘바람의 것이며 동시에 남녘바람의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이상야릇한 새들이 바람을 품어 낳는 중성의 알이라고나 할까요? 내 연인이 죽었다 해도, 이 아픔은 똑같을 것입니다. 목을 잘랐다 해도 역시 똑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삶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해도, 역시 이 아픔은 똑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위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단지 괴로울 따름입니다...“

시인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아픔을 느끼고 있다. 중남미 현대시의 흐름을 바꾼 거장 바예호의 시선집과 인디오들의 소박한 영혼을 노래하는 그의 시는 이 시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소외 계층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1892년 페루 와마추코 성(省) 산티아고 데 추코에서 태어나, 트루히요대학교 문과대와 산 마르코스 대학교 이과대에 입학,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일이 잦았으나 1915년 트루히요 대학교에서 「스페인 시의 낭만주의」라는 논문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부터 트루히요 지식인·시인들과 교류하며 신문과 잡지에 시를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검은 전령」 「트릴세」 「인간의 시」 「스페인이여!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다오」등과 소설 「야만적 우화」 「삶과 죽음의 저편」 「파코 융케」 「텅스텐」, 희곡 「콜라초형제」 「지친 돌」등이 있다. 1920년의 정치적 긴장상태에서 방화범으로 오인되어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나 그 일로 다시 쫓겨다녔으며, 마르크시즘에 심취하였고 평생을 경제적 고통과 병마로 시달리다가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는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어두운 포유동물/ (…) 인간이 진정 하나의 동물이기는 하나 고개를 돌릴 때/ 그의 슬픔이 내 뇌리에 박힌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 내가 사랑함을 알고/ 사랑하기에 미워하는데도,/ 인간은 내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할 때(…)/ (…) 손짓을 하자 내게/ 온다./ 나는 감동에 겨워 그를 얼싸안는다/ 어쩌겠는가? 그저 감동, 감동에 겨울 뿐이다.”(‘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중에서)라고도 읊고 있다.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수없이 실망을 경험한 채로 연대와 희망을 외치는 지치고 사랑스러운 얼굴들이 떠오르게 된다.

우리는 양극화와 갈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행복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일자리 부족과 실업과 상대적 빈곤과 소외와 불통이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우리는 살아왔고 살아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혀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와 이웃의 아픔을 같이 느끼고 함께하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의 상황에 몰입하면 타자와 더 큰 나와 우리를 바라보지 못할 수 있다. 시인과 같은 부드럽고 섬세한 눈으로 이웃을 보고 또 나를 볼 때 그래도 세상은 더 살만하고, 도처에 감사할 일들이 그득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홍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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