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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철도와 경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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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철도와 경제협력

철도는 한 국가와 지역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동서철도의 연결로 서부의 개척과 새로운 도시의 발전이 가속화 되었고 미국의 경제적 부는 빠르게 향상하였다. 유럽의 철도의 연결은 세계에서 가정 오래고 선진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철도로 스칸디나비아 북유럽에서 남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으며 유럽의 동서도 원활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철도의 연결을 통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의 증대는 인류발전에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였다. 일제는 한반도와 만주, 시베리아 등으로 철도 연장을 통해 경제영역을 넓혀 나갔다.

철도를 통해 일제는 한국 및 만주와 중국 등에서 많은 전쟁물자를 조달할 수 있었다.

일제는 한반도에 경부선, 경의선,경원선 등 주요 철도를 부설,운영하며 대륙침략의 기초로 활용하였다. 시베리아 황단철도도 일본주도로 개설되었으며, 유라시아 동서를 잇는 중요한 인프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러 국가를 경우하는 철도는 각국의 사정과 역사적 배경으로 다양한 철도괘도 폭을 유지하고 있다.

각국에서 철도의 건설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중국 최초의 상업용 철도는 1876년 개통된 상하이(上海)~쑹창(淞長) 노선이나 이 철도는 바다에 수장됐다. 그 이유는 운행 도중 행인이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중국인들이 가뜩이나 철도에 반감이 크던 터라 이 사고를 계기로 철도를 해체해 수장했다. 청 조정은 1880년대 이후 철도 건설이 본격화했다. 실소를 자아내는 해프닝도 많았으며 대표적으로 증기기관차 기적소리가 무덤 속 황제를 놀라게 한다는 이유에서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청나라 후기 실권자이던 자희 태후(서태후)는 중국 황실의 기맥(氣脈)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철도 건설을 강하게 반대했다.

일본에서는 1872년 도쿄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가 개통됐다. 일본은 신중하게 철도 건설 계획을 수립했는 그 이유는 건설자금을 해외로부터 무분별하게 동원한 인도와 아프리카가 열강의 식민지가 된 전례를 봤기 때문이다. 철도 건설 사업의 책임자는 을사늑약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다. 그는 영국 은행에서 융자받은 정식 차입금으로 철도 건설비용을 충당했다. 이토는 서구 열강이 기획한, 철도를 통한 식민지화 전략을 잘 알고 활용하여 후에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했다.

만주와 러시아에도 철도가 부설되었다. 만주횡단철도(TMR)로 명명된 만저우리-하얼빈-쑤이펀허 연결 철도는 러시아가 청으로부터 부설권을 획득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지선으로 건설한 둥칭철도(東淸鐵道, Chinese Eastern Railway)에서 비롯했다. 러시아는 만주에서 일본과의 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이 철도를 만주국에 매각했고, 일본은 러시아 광궤를 중국 표준궤로 개량하는 공사를 실시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러시아가 이 철도를 다시 점령했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중국에 반환했다. 러시아 철도에서 광괘( 1535mm)를 도입하게 된데는 여러 이론이 있다. 먼저 니콜라이 2세가 당구를 치고 있을 때 당시 철도장관이 와서 철도 괘도폭을 얼마로 할까요하는 질문에 당구 큐대를 보이며 이만큼 크기로 하라고 해서 광괘가 되었다는 설과, 유럽의 열강들이 러시아를 자주 침공하여 신속한 러아아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광괘를 도입했다는 설도 있다.

중국과 미국의 국교수립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소련에 동해안 항만을 개방하고, 구소련 극동함대가 청진항, 나진항을 사용하게하고, 철도를 이용해 물자를 원활하게 이용하도록 괘도폭도 광괘로 연결하였다. 현재 러시아에서 북한의 나진항까지는 러시아 열차가 기술적 문제 없이 운행할 수 있다.

2001년에는 북한과 러시아가 북한 철도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사업(하산-나진-청진-함흥-평강을 잇는 781㎞)을 실시했다. 공동조사사업은 레일 부설 형태와 관련해 3가지 안(광궤, 표준궤, 광궤+협궤)을 검토했다. 하산-평강 781㎞ 구간 건설비는 최소 24억 달러에서 최대 34억4000만 달러가 소요되고, 투자비 회수기간은 최단11년에서 최장 17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2013년 9월 나진-하산 철도 현대화 사업이 완료됐으며 한국 기업 컨소시엄(포스코, 현대상선, 코레일)이 러시아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려 했으나 제4차 핵실험으로 보류됐다. 포스코-현대상선-코레일 컨소시엄은 사업 타당성 평가를 위한 나진 지역 현지 실사와 3회에 걸친 러시아 석탄 시범운송을 지난해 11월까지 수행했다. 북한 철도를 국제 수송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1998년 중국 지린(吉林)성을 중심으로 본격화했다. 북한과 중국은 신의주(북한)-단둥(중국), 만포(북한)-지안(중국), 남양(북한)-투먼(중국) 3개의 철도 연결 노선을 운영한다.

유럽의 철도에 비해 동아시아에서의 철도의 역사는 늦고 더디게 발전하였다. 동북아에서 남북한과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와의 원활한 철도의 연결은 중요한 과제이며, 이 지역의 경제와 평화의 기반이 되는 시급한 과제다.

김홍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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