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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牛耳)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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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牛耳) 선생님

탁월한 통찰과 지성의 증인이며, 온 몸으로 참 덕성과 사랑의 삶을 실천하며 절제와 품격을 지니셨던 이 시대 큰 스승이셨던 우이(牛耳) 신영복(申榮福) 선생님이 타계하셨습니다. 젊은 날에 이상과 사회와 민족의 변화를 위해 품었던 꿈들로 관련법에 의해 스물일곱에 무기형을 받고, 20년 20일 만에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조용하며 낮은 어조로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조화와 공존을 설파하셨습니다. 오랜 수형 생활의 길고 지리한 기다림과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인간의 의지와 믿음의 위대함과 생명의 존귀함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선생님의 글과 강의는 물론 실천하는 삶은 잔잔하고 깊고 넓게 펼쳐지고 퍼져서 더 큰 울림과 영향으로 우리 시대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언행은 우리 한 사람에 힘과 용기를 주며, 이웃과 상대를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보게 합니다.

낮고 조용한 언어와 자신의 깊은 성찰과 깨달음으로 시대를 깨우고 젊은이를 가슴 뛰게 하고 어른들을 겸허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한 신문과의 면담에서 “한꺼번에 사회가 생각을 바꾸는 역사적 계기는 없습니다. 곳곳에 작은 숲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은 숲들끼리 소통의 연대를 만들어간다면 변화의 역량을 축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전 선생님의 글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쓰여진 족자를 선생님의 친구분 요한(凹漢) 선생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화(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공존의 논리, 동(同)은 지배와 패권·흡수합병의 논리로 읽으셨습니다. 선생님은 “‘동’의 논리는 부단히 독점하고 패권하는 논리입니다. 근대 사회는 개별적 존재를 강화하는 이런 논리로 전개돼 왔죠. 이는 자기 증식하는 자본의 논리이기도 합니다. ‘화’는 존재와 존재가 부딪칠 경우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논리죠. 근대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윤리입니다. 사회계약론, 인권존중론 등도 결국 이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서구 사상은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존재론 논리이지만 동양사상은 개별적 존재만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성을 강조합니다. 동의 논리가 과연 지속가능할까요. 반복되는 경제불황, 금융 위기 등 지속가능이 어렵다는 징표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납니다. 자본축적 논리가 벽에 부딪히면 전쟁의 방식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근대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라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서구의 탁월한 사회적, 공동체적 가치라 할 수 있는 똘레랑스 마져도 오히려 부족한 지배적 담론으로 지적합니다. 그리고 차이(不同)는 나와 다른 타자와의 조화(和)를 위한 새로운 출발의 시작점임을 강조합니다.

선생님이 제시한 이 시대 금언과 깊은 성찰의 언어는 갈등과 절망의 우리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의 지평을 열어주셨습니다. 감방 창문으로 들어온 신문지만한 크기의 햇볕에 생의 의지를 찾고 행복한 시간을 발견하며,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가진 우리의 허위와 자만에 겸허한 가난을 선물하십니다. 말에 머무는 많은 담론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으로, 손에서 발로 실천함을 강조하며 살아있는 지식과 행동하는 지성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나무를 사랑하고 존재로서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여, 한 그루 나무보다 여러 나무가 모여 서로 어깨동무가 되며 ‘더불어 숲’이 되고, 산이 되고 산맥이 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아무리 절망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 본질이고 핵심이며 종자인 석과(碩果)를 보존하는 지혜와 소망을 강조하셨습니다. “씨 과일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준다”며 더불어, 꾸준히 일궈가는 변화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선생님은 우이(牛耳,쇠귀)란 아호를 사용하셨습니다. 우이동에 살으셨던 기억과 어쩌면 우이독경(牛耳讀經)처럼, 성현들의 가르침에 게으르고 나태한 우리들을 깨우려는 겸허한 마음자리를 드러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덕송(牛德頌)을 염두에 두고 꾸준히 정진하며,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지속적이며 오랜 노력을 생각하신 것은 아닌가도 헤아려 봅니다. 선생님과는 2000년대 초 어느 겨울에 지인과의 만남에서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뵌 선생님의 인상은 자상하며 조용하나 예지에 빛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시대의 큰 스승이신 선생님을 우리는 아쉬움과 슬픔으로 보내드립니다. 큰 가르침과 실천을 본받아 우리사회를 공존과 사랑과 평화의 시대로 바꿀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김홍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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