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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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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이 필요한 시대

우리는 오늘날 많은 관계 속에 살고 있으면서 실은 외로운 존재들이다. '군중속의 고독'을 얘기한 리즈먼(D. Riesman,1902~2002)의 오랜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외로움 속에 살고 있다. 물론 고독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며 자아의 성찰로 더 높은 단계로 이끄는 원인이기도 하며 이를 니체(F. Nietzche,1844~1900)는 강조하기도 하였다.

오늘의 우리는 다양한 관계와 특히 사이버상에서의 많은 연계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SNS는 오늘날 존재의 중요한 형식이며 동시에 사회의 이슈와 여론을 견인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구조망에서 우리는 공감(共感)을 필요로 한다. 공감은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러한 마음’으로 정의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처지에 서보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시각을 이해하며,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활용해 당신의 행동지침으로 삼는 기술’로 말하기도 한다. 소통과 공감의 리더, 달라이 라마는 ‘공감이란 나와 나 아닌 다른 것 사이의 소통’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공감은 SNS에서 ‘좋아요(like)'로 나타나기도 하고, 극장의 관객 수나 책의 판매 부수 또는 선거에서의 투표로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수량으로 나타나지 않는 깊은 공감과 동조 그리고 어떤 대상과 사상(事象)에 대한 충성과 열의의 정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생각과 정책도 해당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야 제대로 추진되고 본래의 의미를 달성할 수 있다. 조직은 구성원의 동의와 공감을 얻어 형성되고 힘을 얻게 된다. 회사와 단체나 정부는 대다수 구성원이나 이용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제시와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물론 공감과 동조의 방향과 대상은 다양하다. 먼저 다수의 동조를 얻어 지위를 얻고자하는 지도자가 있고, 동시에 자신의 어려움과 문제를 다수의 동조와 공감을 얻어 해결하기를 원하는 소외자나 피해자들이 있다. 투표와 선거는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고자하는 정치행위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남용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국민’ 또는 ‘서민’ 이나 ‘대중’이다. 투표권자의 다수로 이해되는 이들의 마음과 공감을 얻어야 당선되어 소위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지망생과 선거에 뛰어든 사람들은 다수 투표권자인 서민을 위한 정책을 강조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서민을 위한 정책은 대부분 사라진다. 서민은 ‘민초’라고도 하며 세상 풍파에 휘둘리면 살아온 대부분의 우리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서민은 열심히 일하여 경제적 생산을 담당하고, 가계를 일구어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시켜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며, 자신의 소득으로 소비를 유지하여 다수의 기업과 경제주체의 산출물을 소비하는 국가경제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정치는 서민의 고충을 공감하고 이 공감에 근거한 정책을 펼쳐야 하며, 민주정권이라면 고통받는 서민들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공감은 인류사회의 근간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리고 공감을 얻고 그들의 문제와 아픔을 해결해야하는 대상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아프고 피해를 받고, 더 한이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공감시키는 정책과 대안들이 먼저 모색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생존권과 생명권이 호화로운 생활보다 먼저 추구되어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힘없고 서러운 서민은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또 세월호 참사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그리고 생활권에 대한 아무런 조치 없이 해고당한 노동자와 한시적 계약직에서 고용 불안에 떠는 노동자들, 청년실업자 등이 우선적으로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아픔과 서러움을 공감해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다. 그런 언론이다. 그런 지식인 종교인 그런 정치인, 정부다.

우리사회는 진정 공감을 주고 있는가. 공감을 필요하고 아픔과 슬픔을 그리고 두려움과 외로움을 외치는 사람은 많으나 그들을 감싸 안을 선한 이웃과 조직과 국가는 있는가? 제도와 정책은 어디 있고 누가 그들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는가?

위안부 문제는 피해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최우선적이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상응하는 조치가 문제해결의 전제다. 사과란 ‘잘못했다’는 반성과 책임 인정,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과 적절한 대응이 있어야 하며, 결국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할 때 진정성을 띤다. 세월호의 경우도 피해자들의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공감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공감을 얻는 것도 중요하며, 동시에 내가 이웃의 공감이 먼저 되어 주기를 예수님을 바라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서로 눈을 돌려 이웃을 보고 먼저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면 우리사회는 훨씬 밝고 즐거워질 것이다.

(오마이뉴스에도 기고함)

김홍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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