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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解體)와 혁신(革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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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섭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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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解體)와 혁신(革新)

세기말이나 암흑의 시대에는 폐허(廢墟, Ruins)에 대한 관심과 주장이 일어났다. 급격한 변혁을 필요로 할 때에도 폐허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힘을 받곤하였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 시대 암울한 현실과 희망없는 상황에 대한 반항과 좌절 또는 이에 따른 염세와 탈출을 지향하는 문학사조와 문예지 “폐허”가 발간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폐허(廢墟)는 일제 강점기 1920년 7월 25일에 창간된 문예동인지로, 소설, 시, 논설 등을 주로 싣고,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것도 싣던 종합잡지로 2호로 강제 폐간당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염상섭(廉想涉), 오상순(吳相淳), 이광수(李光洙), 변영로, 변영태, 남궁벽(南宮璧), 김억(金億), 김일엽(金一葉), 이익상, 황석우(黃錫禹), 민태원(閔泰瑗), 나혜석(羅蕙錫) 등이 주도하였으며, 자유주의, 낭만주의적인 작품과 남녀간의 자유 연애에 대한 작품을 실어서 일각에서는 우려와 퇴폐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1919년 3·1 운동의 실패와 파리강화회의 대표단 입장 거부 등으로 좌절한 조선 지식인, 청년들의 민심을 반영하며, 폐허로부터 새로운 창조와 도전을 열망했다.

폐허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나 건축물, 구조물 등이 관리부족이나 고의적 파괴공작, 자연재해, 전쟁,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일부분만 남아 있거나 아예 소실된 흔적을 말한다.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폐허의 형태로 유지,보전되고 있는 것도 많으며, 중국 은허, 인도의 인더스 계곡, 유대 일대, 그레이트 짐바브웨, 지중해 해안의 고대 그리스, 고대 이집트, 고대 로마 유적들, 아메리카 대륙의 잉카 제국과 마야 문명의 유적들 등 역사적 가치가 다분한 폐허가 다수 존재한다.

폐허는 종종 새로운 출발이나 새 질서의 창조를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나 기제이기도 하다. 공산정권의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국가(國歌)“폐허에서 부활하여(Auferstanden aus Ruinen)”를 통해 새로운 질서와 창조를 왜쳤다. 작사자는 요하네스 베허(Johannes R. Becher;1891~1958)와 작곡자는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1898~1962)였으나 동서냉전과 베를린 장벽으로 기악연주로만 활용되었고, 동서독통일로 그 의미는 퇴색되기도 하였다.

이런 폐허와 기존의 제도로부터의 혁신을 지향하는 일단의 사상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체주의로 나타나고 오늘의 사상과 문화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60년대에 프랑스의 비평가 데리다(Derrida, J,)가 주창한 비평 이론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종래의 로고스(logos) 중심주의적인 철학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철학, 사상으로 전체성, 즉 신(神)이나 이성 등 질서의 기초에 있는 것을 비판하고,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表象), 중심과 주변 따위 이원론을 부정하며 본질이 무엇인가를 천착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한다. 이런 해체주의 경향은 현대의 건축, 패션, 문화 등 다양한 분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 사유의 역사를 '해체주의'와 ‘구성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이런 두 흐름은 오래 동안 상생 또는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다고 볼 수 있다. 김형효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인류 최대의 위기라고 진단하며, 새로운 사고와 철학이 없이는 돌파하기 어려운 난세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해체적인 사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해체주의'라는 말은 서양이 만든 것이지만 해체적인 사고는 인류 생성 이래 그 저류를 이어왔다고 본다. 그 흐름의 높은 지경을 형성하는 것으로 노자(老子)와 붓다를 들고 있다. 국가 형성 이래 인간은 집단 생존을 위해 구성주의적 사유를 중심으로 삶을 꾸려왔지만 이제 그 흐름을 완전히 되돌려 자연과 자유의 정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 부처가 말한 ‘서방정토’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래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크게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는 그 영향력에 있어 점차 위상을 잃어가고 있으며, 많은 연구와 조사는 이를 증거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도교와 불교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본질로 돌아가려는 혁신의 자세가 필요하다. 기독교도 초대교회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의 본래의 가르침과 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건물로서의 교회를 세우기에 전념하는 노력을 바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으로 나눌 필요가 커졌다. 강고한 조직과 제도로서의 교회를 넘어 본질과 예수정신으로서의 교회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복음을 듣고 앎에 그치는 값싼 믿음에 머물지 않고, 삶과 저변의 이웃과 현장에 실천하는 것이 절실한 때가 아닌가? 로잔 언약((The Lausanne Covenant·1974)과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Concilium Vaticanum Secundum,1962~1965)는 교회의 방향을 알려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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