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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靑出於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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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섭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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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靑出於藍)

우리는 흔히 스승 보다 뛰어난 제자의 경우를 청출어람이라 말한다. 본디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趙나라의 荀子(순자)가 쓴 <순자>란 책의 권학편 첫머리에 나온다. 그는 배움은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며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靑出於藍靑於藍 (청출어람청어람: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氷水爲之寒於水 (빙수위지한어수: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더 차다)라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부지런하게 공부한다면, 제자도 스승보다 못하지 않을 수 있고 대론 더 뛰어나게 된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경우의 인물을 출람지예(出藍之叡)라고도 말한다.

동서양에 걸쳐 스승을 더 빛나게 하는 많은 제자가 있었으며, 오히려 스승을 능가하거나 좀더 다른 영역으로 넓히거나 깊은 진리나 업적을 이룬 경우가 많다.

孔子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았던 제자 顔回(안회·일명 顔淵)를 특히 총애하였으며 때로 그로부터 배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나이 서른 하나에 요절하지만 않았던들 그는 역사에 큰 성취를 이뤘을 것으로 많은 이들이 아쉬워 한다. "청출어람"의 사례로 중국 남북조 시대의 공번((孔磻)과 이밀(李謐)이란 사제의 이야기다. 공번의 제자가 되어 공부를 하던 청년 이밀은 눈부실 정도로 학문과 지식이 일취월장하여 몇 년 뒤에는, 스승 공번은 제자 이밀이 자신보다 학문이 뛰어난 사실을 알고 나서 자청해서 제자에게 공부을 배웠다고 한다.

서양의 그리스에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이지만 서로 다른 관점과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영향력을 이루고 인류의 스승으로 우뚝 서 있지 않는가? 누가 더 위대한가라고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출람지예를 자랑하는 사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학자로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를 들며, 그 제자들로 이황은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정구(鄭逑) 등 문하생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이루었고, 이이(李珥)는 김장생, 박세채, 조헌 등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했다. 조선 불교에서도 경허(鏡虛), 만공(滿空), 효봉(曉峰)으로 이어지는 사제의 전통이 유명하고, 현대에도 유영모,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사제의 경우를 들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비단 학문의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스포츠와 무술 등에도 볼 수 있으며 그런 전통과 아름다움이 많다. 우리는 바둑에서 조훈현 9단은 애제자로 이창호를 가르쳤으나 후에 그에게 이기도하지만 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코치가 모두 금메달을 땄던 것은 아니다. 사제 간의 구분이 엄했던 시대에도 제자가 스승을 능가하는 것은 오히려 스승에게 커다란 영광이었다.

이러한 청출어람의 훌륭한 경우를 우리는 정신분석학의 사제관계였던 프로이드(Sigmund Freud,1856~1939)와 융(Carl Gustav Jung,1875~1961)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융은 정신분석의 진정한 창시자인 프로이트에 대한 커다란 존경심을 품었지만 그의 학설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인간의 모든 리비도를 결국에는 성적인 것으로 환원해버리는 프로이트의 일원론을 넘어서기 위해 융은 끊임없이 분투했다. 융의 연구의 방향은 단지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만이 아니었고,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신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부하고 싶어 했다. 한 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를 통해 인류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것이 그의 커다란 방향이었다. 젊은 시절의 융은 스승인 프로이트 이론을 넘어서기 위해 프로이트 이론의 맹점을 하나하나 반박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융에게는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산이었으며, 융은 스승 프로이트를 넘어선다는 것은 단지 프로이트는 틀리고 자신은 옳다는 식의 이분법적 틀에 있지 않았다. 스승인 프로이트의 업적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 이론이 갖는 한계나 간과한 측면을 궁구하면서 프로이트 사상의 맹점을 공정하게 파헤치기를 시도했다. 스승 프로이트와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융 자신이 자기다운 사상적 틀을 형성해가면서 새로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지평을 열어 나갔다. 정신질환이 시작되는 최초의 순간을 프로이트는 유아기의 성적 트라우마에서 찾곤 하지만, 융은 우선 각자가 처한 현재의 욕망과 행동에서 찾고자 했다. 그는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정신적 과제를 뛰어난 의사에게 우리 정신의 주도권을 맡겨버리는 수동적인 체험이 아니라, 내 무의식의 진정한 발견자와 치유자는 자기 자신임을 알게하는 것이었다.

학문과 사상의 발전은 지속적인 질문, 교육, 학습, 탐구 그리고 경계와 벽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생각의 틀과 여건에서 더 잘 발휘되고, 새 장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더 많은 청어람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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