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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경영 |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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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섭 교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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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I. Kant, 1724~1804)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공적’이라는 것과 ‘사적’이라는 것의 일반적 개념을 뒤집는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상식으로 공적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것이고 사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도 칸트는 국가적인 것을 사적인 것이라고 하며, 역으로 거기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공적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국가니 사회니 종교니 하는 집단의 이익을 챙기는 태도가 오히려 사적인 것이고, ‘자유로워지라’는 정언명령에 따라 사고하고, 인간 본연의 근원적 가치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개인이야말로 진정 공적인 존재라는 칸트의 가르침은 철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새롭게 강조하는 가라타니 고준(柄谷行人)은 “...국가를 실체가 아니라 일종의 교환 시스템으로 사유하기를 바라고,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 기구로 본다. 지속적으로 강탈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다른 적으로부터 보호한다거나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가의 원형이며, 국가는 더 많이 그리고 계속해서 수탈하기 위해 재분배함으로써 토지나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고 관개 등 공공사업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려고 한다. 그 결과 국가는 수탈의 기관으로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농민이 영주의 보호에 대한 답례로 연공(年貢)을 지불하는 것처럼 생각된다...”고 지적한다.

국가는 신성하고 우리의 존립의 중대한 근간이다. 나라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국가는 엄중하고 목숨바쳐 지켜낸 선열들의 희생을 값있게 여기고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오고 있다. 칸트와 가라타니 고준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경험과 전통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선열들의 희생은 적어도 독재자나, 국왕 개인의 사리사욕, 붕당과 집단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것은 아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과 의리를 위해 죽음을 감수한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것은 조폭논리나 광신 집단의 경우일 것이며, 그것을 찬양하거나 고귀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향한 가치가 인간의 근원적 생명, 자유, 정의, 사랑 등을 지향하는 것인지의 여부일 것이다. 국가가 국민과 민족의 근원적 가치인 생명과 자유 그리고 정의와 평등 및 공생과 공존 등을 지향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공적인가 아닌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히틀러(A. Hitler)가 자신의 정치적 성공과 이해를 위해 또는 허위적인 게르만 민족의 패권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하는 등의 행위는 그것이 국가란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공적인 것일 수 없으며, 정당하거나 정의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전제군주정하에서의 백성들의 노동과 정당한 재산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경제, 사회 구조도 결코 공적일 수 없고 전제군주 개인이나 가족, 귀족 집단을 위한 사적인 행위인 것이다.

문학과 예술도 인간 본연의 가치와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일 때 그 본질적 영역을 갖게 되지만, 특정 정당이나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빛을 잃게 된다. 특정 정당이나 사상적 틀 안에서 예술을 접근하는 것은 제한적 의미밖에 갖지 못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에 기초한 공산정권의 예술이 그러하며, 파시즘이나 지나친 민족주의에 기초한 작품들도 그 가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까닭은 거기 그려진 구체적·개별적 삶을 만나고 그로부터 모종의 보편적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문학이란 기왕의 보편성에 흠집을 내고 그 한계를 깨뜨림으로써 더 넓고 깊은 보편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험과 도전이기도 하다. 문학에서 보편성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지 한계와 제약으로 구속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란 최재봉 시인의 지적은 보편과 특수, 순수와 참여 등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우리시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한다. 국가나 조직 또는 개인이 ‘공적’인가 ‘사적’인가라는 구분은 행동의 주체가 국가나 집단인가 개인인가에 초점이 있기 보다는 지향하는 가치가 인류 보편적이며 인간 근원적 가치인가 아니면 특정 집단이나 권력계층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에 있다고 할 것이다.

칸트와 가라타니 고준의 주장은 우리시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해 혼동하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는 소홀이하고, 목소리만 높이고 자신의 종교나 집단이나 파당이 공적이며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우리사회에 성찰을 요구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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