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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두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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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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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영화 <미션>(롤랑 조페 감독)은 그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두고두고 기억하고 생각할 영화이다.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볼 때쯤이면 다시 한 번 꺼내볼만하다. 영화의 배경은 1750년 남아메리카의 이과수폭포가 있는 지역으로 그 폭포 위에 사는 과라니 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과수폭포의 장면이 장관이다. 이제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 목사와 함께 신학대학 4학년 때 함께 이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꽤 많은 시간 자고 나온 친구가, ‘정말 괜찮은 영화더라!’ 그래서 속으로 좀 웃긴 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다시 보니 때 극장에서 본 이과수폭포의 장관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폭포의 웅장함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영토를 다툰다. 예수회 신부들이 선교해서 개화시킨 과라니 족의 영토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가 영화의 화두이다. 원주민들을 잡아 노예 매매를 하는 자들, 또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종교적인 갈등이 얽혀서 예수회 신부들이 열심을 다해서 과라니 족을 감화시켜 근대적인 마을로 발전시키고 교회당을 세운 그 모든 노력들을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페인에서도 추기경이 파견되어 오지만 그는 결국 이 과라니 족을 돕지 못한다. 그러자 원주민들과 멘도자 신부는 그들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포르투갈 군대와 맞서 싸운다.

그런데 이 멘도자 신부는 전에 원주민들을 잡아 노예로 팔던 악랄한 노예상이었고 한 여자를 두고 친 동생과 다투다가 결투에서 동생을 찔러 죽인 후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사람이다. 가브리엘 신부의 도움으로 회개하고 신부가 되어서 과라니 족의 전도에 큰 기여를 했다. 속죄를 위해서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메고 폭포의 절벽을 기어오르던 장면을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볼 수 있다. 그러자 원주민들이 용서의 뜻으로 그 줄을 끊고 폭포 아래로 떨어뜨려 버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 원주민들이 결국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한 교회 세력에 배반당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멘도자는 가브리엘 신부에게 가서 순종의 서약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다른 두 명의 신부도 마찬가지로 원주민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가브리엘 신부는 말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사랑과 평화이지 그런 무력이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들을 상대할 힘이 자기에게는 없다고 하지만 멘도자 신부는 듣지 않고 결국 이 두 신부들은 이렇게 나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이 땅에 실현하려고 각자 노력한다.
물론 싸움이야 결과가 뻔했다. 아무리 애를 써서 포르투갈 군대를 맞서려고 해도 대포를 앞세운 군대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원주민들도 죽어가고 신부들도 차례로 죽는다. 그리고 가브리엘 신부도 여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찬양을 하고 미사를 집전하다가 군대를 향해 평화 행진을 한다. 군대가 여자와 아이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가운데 결국 가브리엘 신부도 죽는다.

이 두 신부들의 노력은 방향은 달랐지만 그 길은 결국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의 평화의 정신을 그들의 몸을 통해 실현한 것이고 그들이 선교하던 원주민들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보여준 정 반대지만 같은 뜻을 가진 행동들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학살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몇 명이 나오는데 한 소녀가 칼 대신에 바이올린을 선택해서 손에 쥐고 쪽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은 의미 있는 여운을 남겨준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 멘트가 나오는 대로 살아남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교훈을 주는 사람들이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속에서 원주민들의 고통과 함께 한 그 신부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소외된 사람들, 우리가 선교해야 할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면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 있다. 어떻게 하면 정의의 편에 서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불의에 맞서 목숨 바쳐 싸우는 것도 주님을 향한 사랑이고 평화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역시 주님을 향한 사랑이다.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 더욱 생각을 깊게 하게 하는 여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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