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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식인들 지식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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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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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환 박사 김호환 박사

 

독재에 대한 투쟁과 국민 주권에 대한 선한 의지는 시대적 순간에 한 토막의 테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언제나 민주 투쟁혹은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자신의 정권이 수립될 때까지 그 구호를 끊임없이 외친다. 주변의 많은 어리석은 자들의 모임은 이를 더 공고히 하며, 마치 무슨 철학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시대적 사명으로 구호를 반복한다.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학연, 지연, 인맥 동원뿐만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 땅과 지역 주민들의 운명도 스스로 결정한다. 이로써 탄생된 것이 전라도 주의와 경상도 주의이다. 한 많은 전라도와 고집스럽고 자존심 강한 경상도가 스스로 잘못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정치인들의 모략과 술수가 근본 원인이 되었다.

한국의 남도는 탁월한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었다. 그러나 인구 면에서 경상도에 비해 언제나 열세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라도의 정치적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동원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쯤, 남도의 많은 지도자들은 소위 반독재 항거로 반공법에 걸려 유배되거나 생애 심각한 위해가 가해졌다. 북한의 김일성은 당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퇴출되거나 망명인사들을 접촉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의 후일 좌파 정권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후일 대통령이 된 이들 중에는 김일성으로부터 개인적인 도움을 받은 이도 있었다. 그 대가가 어떻게 지불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지만, 분명 남한의 망명인사들은 더 이상 북한을 접촉할 수 없는 악마의 나라라고 하는 인식을 저버리게 되었다. 김일성과 그의 나라는 유럽 지식인들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이상향을 한 때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이 오히려 친숙한 이상향의 나라로 접수되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무드(mood)에 젖어 있었다. 북한을 비밀리 방문하거나 혹은 접촉을 하거나 관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깊은 자부심으로 여기기도 했다. 심지어 사회주의 사상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얻어듣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자기지식으로 여겼던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레닌의 글도 스탈린이 남긴 어록들도 읽지 못했다. 물론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동경하던 서구학자들이 남긴 사회주의 이념에 탐닉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자신들을 위로해주는 도피처임과 동시에 다른 이들보다도 우월하다는 자존심에 빠져 있었다.

지난 80년대부터 시작된 주사파의 방향성은 결코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개별적인 공부와 북한의 의도적인 접촉 등으로 말미암아 거대한 사조직으로 발전되어갔다. 문제는 그들이 맞닿은 시대상에는 자유와 민주, 그리고 평등과 정의, 사랑이라고 하는 개념들을 충분히 만끽할 수 없었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었다.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고 역사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도 없고 개인적으로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도 없는 암울한 시대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부 밖에는 출구가 없었다.

그들은 후일 우리들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을 떠난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칸트가 될 수는 없다. 고향을 떠난 적이 없으면서도 세상을 알기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식의 한계는 오직 적이냐 아군이냐 하는 이분적 구도 속에서 발생했으며 그들의 머릿속에는 육법전서를 자신들의 출세를 위하여 얼마나 교묘하게 잘 이용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호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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