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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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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 인천대 교수

 

기다림은 우리 인생의 중요한 일이며 마음과 행위의 상태다. 즐겁고 행복한 것을 기다리는 기쁨과 기대가 있으며, 어렵고 힘든 과업의 성취나 곤경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힘들고 지리함도 있을 것이다. 잠시 잠간의 기다림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 수백 년의 기다림도 있다. 기다림에 대한 심적 상태에 따라 그 시공간적 길이와 한계는 달라진다. 일각이 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경우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라는 믿음도 있다.

인생은 기다림에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는 기적도 10달이란 긴 기다림이 있다. 어머니 뱃속의 편안함과 동시에 외부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통해 고고지성(呱呱之聲)을 하며 태어난다. 태어난 아기가 뒤집고 걷고 뛰기까지의 긴 기다림과 옹알이를 지나 말을 배우며 그리고 학교에 가고 성장하여 또 사랑하는 사랑을 만나고 일터를 정하고 다시 아이를 낳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세대가 이어지고 인류사회가 지속된다.

기다림은 늘 시간과 관련되어 이해된다. 김치가 익어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맛있는 된장과 간장이 숙성되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향 깊고 품격 있는 와인으로 숙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공자(孔子)께서 지학(志學),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 그리고 불유구(不踰矩)의 경지에 이르는 데는 많은 공부와 수양을 수반하는 연륜과 기다림이 함께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많은 기다림과 함께 한다. 깊은 어둠의 밤에 우리는 여명과 아침을 기다리며, 바쁘고 힘차게 일하고 나선 저녁과 쉴 수 있는 밤을 기다린다. 자가 운전자는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서 앞으로 나아가며, 버스나 지하철이 오기까지 서서 때로는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식당이나 극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은행창구에서 병원에서 내 번호를 부를 때까지 우리는 기다린다. 그리고 오늘 만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때까지 손꼽아 기다리며 그리고 떠나간 사람을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 우리는 창문을 바라보거나 뒤를 돌아보며 기다린다.

인생에서는 물론 조직과 한 문명에서도 시작과 성장과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며 무르익음으로 풍성해지게 된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인 작은 기업이 더 많은 참여자와 동역자들의 힘으로 점차 커져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다. 동구밖의 거대한 느티나무도 오랜 시간과 기다림으로 저 풍성함을 자랑하고 있다. 추운 겨울의 침잠과 월동의 기다림으로 봄날의 화사함과 꽃 만발한 꽃대궐이 가능하다.

흔히 기다림은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기다림은 동시에 설램과 희망과 기쁨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소풍을 기다리던 기다림을 기억하는가? 맛있는 음식과 삶은 계란과 재미있는 친구들과의 뛰고 달리고 놀이하는 소풍은 어쩌면 기다림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니었는가?

기다림과 대응되는 말로 우리는 ‘누림’을 생각할 수 있다. 오랜 기다림이 이루어져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 그리고 그 상태를 향유하며 즐기는 상황을 누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림은 꿈을 이룬 상태, 그리움이나 결핍을 해소한 상태를 일컫는다. 우리에게 이런 누림의 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이는 심한 경쟁이 상존하며 인간의 본래의 심성이 현재의 조건에 만족하기 보다 더 나은 상태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욕심과 편해지려는 본능과 자만심 등으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을 한다.

우리는 늘 꿈과 미래에 대한 기다림에 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 낭비일 수 없다. 기다림은 더 행복한 것, 더 건강한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참되고 진리인 것, 더 근원적이며 더 자유롭고 더 성스러움을 지향하게 된다. 평화와 통일과 평등과 일치를 지향하며 부와 행복을 그리고 구원을 지향할 것이다.

조급함과 ‘빨리 빨리’의 마음에서는 기다림은 짐이며 거추장스런 것일 수 있다. 기다림은 오랜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절제와 인내의 산물이며 기다림의 근간은 믿음이며 사랑이다. 수 천년을 기다려 온 메시아와 그 재림을 앞으로도 한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의 정토(淨土)를 바라며 수 천년간 미륵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기다릴 만큼 기다렸어’라거나 ‘오지 않을 거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란 생각은 의미 없다.

기다림은 바램이며 꿈이며 믿음이며 신앙이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에서 불필요한 시간 낭비나 쓸데없는 행위가 아니라 인생의 힘이며 바램이며 본질이며 삶이다. 희망이며 원동력이며 성숙하게 하는 지혜며 수묵색 물빛이며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이며 밤하늘의 별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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