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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기회로 만든 위기의 경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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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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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 교수

 

역경을 기회로 만든 위기의 경영자들

 

 

 

탁월한 리더십은 위기에서 더 빛난다. 12척의 배만 남았을 때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절체절명의 각오로 300여척의 일본해군을 명량해전에서 무찌른다. 울돌목이란 지리(地利)와 물때를 활용한 절묘한 전략과 탁월한 리더십이 전쟁을 이기고 나라를 구해낸 것이다. 많은 경영의 현장에도 탁월한 경영자의 판단과 용기로 위기를 해쳐 나와 성공과 번영의 길을 열어나가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20세기의 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에 속한다. 이런 빌딩의 건설에도 탁월한 경영자의 외로운 결단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1930년대 미국에 경제공황이 밀어닥쳐 은행, 공장, 심지어는 학교 등이 문을 닫고 경영주들이 자살하는 등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그때 라스코(J. J. Lasco)라고 하는 실업가는 증권에 투자했던 자신의 돈을 빼내 많은 실업자들을 동원하여 맨해튼에 거대한 빌딩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라스코는 미쳤어. 저 사람은 망할 거야”라고 했지만 그는 주위의 비난과 외로움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1929년에 시작해 1931년에 완공한 그 건물이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이 건물은 한창 미국이 경제 공황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을 때에 한 경영자의 용기와 결단으로 지어진 건물로 많은 공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의 경제를 받쳐주는 중요한 사업이 되었다.

또 하나의 미국의 명물이 금문교(Golden Gate Bridge)이다.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반도를 연결하는 강철로 된 다리로, 당시 기술로는 건축이 불가능해 보였던 1937년에 조셉 스트라우스(Josef Strauss,1870~1938)라는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어 완성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현수교다. 천혜의 항만조건을 가진 샌프란시스코는 1818년부터 시작된 골드러시와 1869년의 대륙횡단철도의 개통으로 일취월장 성장을 거듭하여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만을 가로질러 오렌지빛의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는 금문교는, 1937년 준공과 함께 이 도시의 상징을 넘어 프론티어쉽으로 통하는 미국의 개척정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못지 않은 명성에 걸맞게 매년 이 곳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숫자도 9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2000년 현재, 연간 통과차량이 4,100만 대에 달하며 미국 연방 고속도로망의 핵심노선으로 뿐만 아니라 산업, 경제, 관광분야 등 경제 발전의 엔진으로서도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금문교의 건설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경영자가 지아니니(A. P. Giannini,1870~1949)다. 그는 이탈리아계 이민 2세로 19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수의 대중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탈리아 은행(Bank of Italy)을 설립하였다(1930년 ‘Bank of America’로 개명). 그는 양아버지의 농산물 가게를 그만두고 농부들이나 소규모 사업자들에게는 지불 기일을 정하지 않는 자유기한의 대출을 해주었으며 소액 예금자나 대출자의 편의를 봐주었다.

그는 1906년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때 금괴와 유가증권들을 안전하게 보관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 재건을 위해 대부해주었다. 특히 대지진으로 예금을 빼겠다며 몰려든 군중들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 타 은행 경영자들은 6개월간의 지불정지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는 “6개월 후에는 우리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고객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북쪽 해안에 임시 영업소를 개설하고 이름과 서명만으로 주택 복구비 등을 신속하게 대출해 주었다. 이는 금고 속의 돈은 은행이 아니라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평소 지론을 실행한 것이다. 이를 통해 지아니니는 고객과 “재난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은행”이라는 탄탄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주택 대출, 자동차 대출 등 다양한 형태의 신용 대출을 활성화시켰고, 영화, 캘리포니아 와인 등 그 당시 미개척 산업에도 자금을 지원하였다.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에 200만 달러를 지원하여 성공시켰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적 건축이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받은 금문교 설립에도 탁월한 경영철학과 용기를 갖고 당시에는 엄청난 거금인 600만 달러를 대출해 주어 오늘의 명물 금문교를 건설 가능케 해준 경영자였다. 물론 독일계의 탁월한 설계자 조셉 스트라우스의 역량과 동시에 지아니니의 용기와 결단에 의해 세계의 명품 현수교가 가능했던 것이다. 공사 설계, 시공중에도 스트라우스는 ‘인간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으로 다리를 설계, 시공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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