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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 여행- 마가복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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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이희우 목사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설교가 있고, 금방 잊혀지는 설교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설교 듣는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람 마음은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가톨릭 성서학자인 유철 박사는 비유 가르침을 통해 본 세태 논평인 이것도 모르면서라는 책에서 한 뱃속에서 나온 자식인데 어쩌면 저렇게 다를꼬?”라는 속 썩이는 자식을 두고 하시는 이 세상 어머니들의 안타까운 말씀으로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논평을 시작했다. 제목은 마음 밭을 일구어라”, 그는 어머니들의 이 말씀이 갈릴리호숫가에서 사람의 됨됨이, 즉 마음 밭의 다양성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설교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요한이 그가 남긴 복음서 끝부분인 요한복음 2125절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라고 했을 정도로 가르친 내용이 많았기에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목마른 사슴처럼 크게 감동 받은 사람들(11:27)도 있었고,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기는커녕 종교적 우월감으로 분노하며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사람들(5:18)도 있었지만 어느 봄날, 배를 타고 계시던 예수님은 바닷가에 모여든 큰 무리를 씨 뿌리는 자라는 비유의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1) 비유(parabole)로 가르치시다

 

예수님은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 밭을 네 가지 비유로 설명하셨다. 비유를 뜻하는 헬라어 파라볼레는 옆(파라)에다 던져놓는 것(볼레), 하신 말씀의 이 비유(41)였을 만큼 비유는 당시 서기관이나 랍비들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이 즐기셨던 교육 방편이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좋은 밭’(good ground)과 마음을 닫고 말씀을 거부하는 길가’(way side), 그리고 말씀에 따르겠다고 결심은 하나 순종하다가 거부하는 돌밭’(stony ground)가시덤불’(thorns), 예수님은 알아듣기 쉬운 비유로 그 의미를 생생하게 전하셨다.

 

이병용 박사는 그의 책 비유를 산다에서 비유는 듣는 이에게 충격을 주고, 그를 뒤집어 놓고,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준다고 했다. 비유가 고정관념과 정해진 기대감을 깨고, 새 시각·하나님의 시야로 세상과 사물을 다시 보게 하며, 듣는 이를 하나님 나라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다만 비유는 알레고리(allegory)와는 구분해야 한다. 1-9절을 비유적 해석, 10-20절을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구분하며 1-9절은 씨 뿌리는 비유로 제목을 정하고, 10-20절은 밭의 비유라 제목을 정하기도 하나 통칭 씨 뿌리는 비유는 예수님의 알레고리적 설교의 대표적인 예()로 분류할 수 있다.

 

2) 당시의 농경법

 

옛 팔레스틴 지역의 파종법은 땅을 갈아엎고 평평하게 고른 후에 씨를 뿌리거나 모판에서 키운 어린싹을 밭에 옮겨 심는 우리와 달랐다. 팔레스틴 농부들은 먼저 씨를 뿌린 후 밭을 갈아엎었다. 그래서 밭과 밭 사이의 작은 통행로인 길가나 가시떨기, 심지어 돌밭에도 씨를 뿌렸다. 가시떨기는 물론 돌밭도 석회암층 깊이가 불과 10센티미터도 안 되기에 나중에 갈아엎은 것이다. 그래서 네 종류의 밭에 씨를 뿌릴 수 있었던 셈이다.

 

당연히 씨앗의 손해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길가에 떨어진 것은 뿌린 즉시 새가 와서 먹고, 바람에 날리거나 사람들의 발에 차여 사라질 수도 있었다. 또 가시떨기에 떨어진 것은 양분이나 햇볕을 가시떨기에 빼앗겨 웃자라거나 빈약해지고, 돌밭에 떨어진 것은 자라는듯하다가 뜨거운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시들 수도 있었다. 서기관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길가 밭이라면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재물과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돌아갔던 부자 청년은 마치 가시떨기와 같았다. 반면에 좋은 땅에 심긴 씨앗은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

 

3) 거둘 날이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하나님의 섭리로 바벨론 포로라는 끔찍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오는 꿈꾸는 것 같았던 황홀경으로 부른 노래처럼 씨를 뿌리는 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결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물론 열심히 노력해도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그 모든 수고의 곡괭이 끝에 금맥이 발견될 수 있다. 2,399번의 실패를 거쳐 2,400번 만에 필라멘트(filament)를 만드는 데 성공한 에디슨(Thomas Edison)처럼, 불량배들과 어울려 쾌락을 쫓고, 도둑질하며 방탕하게 10대를 보내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한 여자와 동거하여 사생아를 낳고 기독교 이단이던 마니교(Manichaeism)에 흥취하며 20대를 보내던 아들 어거스틴(Augustine)을 위해 눈물의 기도라는 씨앗을 뿌렸던 모니카(Monica)처럼 씨 뿌리는 자는 포기하지 말고 30, 60, 100배의 열매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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