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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상과 주체사상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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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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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학 감독 이규학 감독

1. 주체사상의 탄생.

북한에서 주체의 문제가 최초로 제기된 것은 19551228일 당선전선동원대회에서 김일성이 행한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에서이다. 당시 소련의 지원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김일성의 주체문제를 거론하면서 주체사상이 탄생하였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독자노선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스탈린 이후 집권한 호르시초프는 사회주의 국가의 독자노선을 허용하는 사회주의에로의 다양한 길을 인정하였다. 유고의 티토의 독자노선에 대한 인정이 그 예이며, 김일성이 주체 문제를 제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내부적으로 스탈린 주의를 바탕으로 통치하였던 김일성이 스탈린의 사망과 함께 당내의 소련파, 연안파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김일성은 당내의 도전세력을 견제하고 지도력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사상의 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김일성은 소련파, 연안파들이 소련과 중국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비주체적인 자들이라고 몰아 숙청을 단행하였다. 주체문제가 표면상으로는 교조주의, 형식주의, 사대주의를 배격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에게 도전했던 반대파들의 제거 수단이었던 것이다.

 

2. 주체사상의 체계화.

북한은 주체사상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항일 혁명투쟁과 연결시켰으며 김일성의 통치이데올르기로서의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주체문제를 제기한 연대를 조작하였다. 1950년 중반에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1970년대에 와서 주체사상이라는 표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에 19306월 장춘현 카룬에서 열린 공청 및 반제 청년동맹의 간부회의에서 제기하였다고 조작하였다.

그 후 1980년대에는 주체사상을 현시대 노동계급의 영생불멸의 지도이념이라고 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주의 보다 우월한 사상으로 추켜세우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198010월 제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부터 더욱 강화되었다.

1980년 후계자 승계 과정에 있던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체사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체계화되었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원리를 규정하고 그에 따라 인민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높여야 하며, 그 실천방법론으로 지도적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지도적 원칙은 자주적 입장” “창조적 방법” “사상을 기본으로 틀어쥔다.”는 세 원칙이며 그 중 자주적 입장은 이전 주체사상 그 자체로 생각되어 왔던 4개 노선으로써 사상주체, 정치-자주, 경제-자립, 국방-자위로 정리하였다.

 

3. 주체사상의 변천.

김일성에 의해 도전세력 견제, 지도력 강화를 목적으로 탄생한 주체사상은 점차 종교성이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1967년부터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지배구조에 대한 논리적 이념체게인유일사상체계를발전시켜 1970대에는 혁명적 수령관을 강조하면서, 70년대 중반부터는 혁명적 동지애와 의리, 집단주의 영웅주의를 강조하였다.

1982년에는 주체사상의 철학적 측면의 체계화가 일단락된 후, 1986년에는 수령론과 집단주의 사회조직원리를 결합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 발전시켜 민족주의로 나아갔다. 탈냉전이후 민족개념을 부각시키면서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주장하면서 타 사회주의 체계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우리식 사회주의 체계의 우월성을 이론화했다.

주체사상은 단순한 이데올르기로 출발하여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되고 있다. 주체사상이 종교적 차원으로 발전되는 계기는 수령론이 대두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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