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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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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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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이종전 교수

우한(武漢), 사실 그곳이 어디쯤 있는지? 어떤 도시인지? 그동안 잘 몰랐다. 중국의 면적이 얼마나 넓은데, 곳곳을 안다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의 중소도시도 다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외국의 도시를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 즉 특별한 관심이나 관계가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온 세계가 알게 된 도시, 우한이 매일, 매순간 톱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이참에 우한이라고 하는 도시를 세상 사람들이 대부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 중국 어디에 우한이라는 도시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도, 관심도 없었는데, 다시 한 번 지도를 찾아보면서 어디쯤에 있는 곳인지 확인하게 되었으니 꽤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중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중국과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한발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의 유행 때문에 전 세계가 그곳을 알게 되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인구가 워낙 많으니 웬만한 도시라면 주민이 1천만 명쯤 되는 것은 보통이다. 따라서 단지 대도시라는 것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한 역시도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지만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곳이었으니 중국이 크긴 큰 나라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우한발 바이러스공포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과 우한, 그리고 그 도시와 관련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도 없는 것들을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면에서든지 중국이라는 나라를 조금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자세, 국가차원에서 위기관리를 어떤 수준에서 대응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대는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역의 문제는 그 지역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간적인 교류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한발 폐렴이 전 세계인들에게 관심과 두려움을 갖게 한 것이다. 과거는 공간이동의 한계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에 대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일생활권으로 바꾸어준 교통수단의 발달은 지구촌이라고 할 만큼 전 세계의 곳곳을 하나의 공간으로 묶어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서 어떤 사실이 어디에서 일어났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동반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지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전 세계가 알게 된다. 그만큼 파급력이 획기적이고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력을 동반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뵈지도 않는 전파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지구촌 전체가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감추거나 통제를 하려고 해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따라서 공포와 두려움이 더 커지게 되고, 실제보다 훨씬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한 폐해는 결국 우리에게도 주어졌다. 우한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을 보호차원에서 귀국시킬 것을 결정했는데, 문제는 교민들을 잠복기 동안 어디에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가 되었다. 정부는 일단 교민들을 국가가 철수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고, 잠복기간 동안 격리된 곳에서 생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민들을 격리할 곳이 있는 지역민들의 입장이다. 왜 하필이면 자신들의 지역으로 격리시키려는 것인가 하는 반발이 일어난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러한 일에 대처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리고 해당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모두 아쉬운 마음이다. 이번 일로 진천과 아산이라는 지역이 국민들에 알려지긴 했는데 왠지 아픈 마음이다. 우한에서 입국한 당사자들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해당 지역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모두 아프다. 그렇지만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사태를 이용해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마치 중국에서 마스크를 매점매석해서 엄청난 이윤을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처럼, 이러한 사건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다지려고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더 아프게 한다.

누가 아프기를 원했겠는가? 누가 우한에 살기를 원했겠는가? 누가 야반도주해서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모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로 인해서 다툼이 생긴다. 우한발 바이러스로 인해서 인간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게 되었다. 이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넘어서 당면한 현실에서 극복해야만 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과제이다. 그런데 정략적, 또는 이해관계를 전제로 대처하거나 이해한다면 공멸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자처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우한발 바이러스는 인간의 한계와 함께 그것에 대처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까지 깨닫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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