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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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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이종전 교수

 

연말이 되면 사람들이 쓸쓸한 분위기에 젖는다. 아마 자연적인 환경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사실은 자연의 생명체들은 쉼을 얻는 기간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쓸쓸하게 느끼는 것이리라.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풀들은 생명력을 잃은 채 메말라 있는 상태에 삭풍이라도 부는 날이면 목은 움츠려들고, 옷깃은 더 세우게 된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는 날이면 더 휑한 느낌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가 하면 정신없이 지내다가 연말이 되면서 뭘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는지 스스로 허전한 마음 때문에 느껴지는 쓸쓸함도 있을 것이다. 연말이라는 정한 시간을 눈앞에 놓고 조급하게만 지내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허전함이라고 하는 것이 어떨지. 아무튼 연말이 다가올 때 사람들은 지내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로 그 허전함을 달래려고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여 평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나 연말이면 그래도 뭔가 자신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일이 있기를 원한다.

동짓날 즈음에 추위에 쫓겨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길을 가다 문득 들리는 종소리가 잠시 멈칫하게 한다. 그것은 쓸쓸하게 느껴지는 연말의 분위기를 깨워주는 소리와 같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자신의 허전함을 깨우면서 달래주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와 관계없이 그 종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몇 푼 아니지만 기꺼이 빨간 냄비에 손을 넣는다. 어쩌면 연말에 느끼게 되는 쓸쓸함을 냄비에 손을 넣는 것으로 스스로 달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간혹 연말에 등장하는 빨간 냄비에 넣기 위해서 1년 혹은 몇 년을 모아 의미있는 일에 쓰겠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는 길에 만난 빨간 냄비와 종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혹은 연인들끼리 지나는 길에 재미로 냄비를 찾는 경우도 있다. 도심의 인파가 많이 지나는 길목에 종소리와 함께 만나게 되는 빨간 냄비는 쓸쓸한 연말을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비록 준비한 것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옷깃을 세우고, 목을 깊이 묻은 채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던 사람들. 각자 모두 어딘가를 향해 그렇게 열심히 걷고 있는지 모르지만 바삐, 그러나 쓸쓸한 연말의 분위기에 쫓기듯 향하던 발걸음이 종소리와 함께 빨간 냄비 앞에 멈추게 된다. 연말과 성탄을 맞으면서 도심의, 그것도 오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에서 빨간 냄비가 만들어주는 따뜻함과 허전함을 채워주는 여유로움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아보지 않았지만 한국의 거리에도 연말이면 빨간 냄비가 시린 마음을 조금 따뜻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마음마저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소식이 들렸다. 빨간 냄비가 짝퉁이라는 것이었다. 2017년의 일인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당시 언론들은 짝퉁 빨간 냄비라고 하는 제하의 기사들을 실었었다. 그리고 어떤 언론사는 짝퉁 구세군 자선냄비 등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가짜 구별하는 방법이라는 글까지 실었다. 외모로 볼 때 너무나 비슷하게 만들어져서 진짜와 구별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어떤 언론사는 제목을 구세군 자선냄비 가짜 구별법 총정리라고 적나라한 표현을 해서 보도했다.

제목이 주는 표현은 현실에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정보를 담았다는 의미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싶어 매우 의도된 것이겠지만 정작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더 춥고, 쓸쓸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나마 연말에 스스로 위로를 받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더 얼어붙게 하는 표현이니 말이다. 선한 일을 빙자해서 자기들의 목적을 위한 짝퉁 자선냄비까지 만들어놓고 거리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종을 울리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어찌 할 일이 없어서 자선냄비까지 짝퉁을 만들어야 할까.

새해엔 짝퉁이 없는, 신실함이 여유를 주는 날들이면 좋겠다. 비록 나누는 것이 부족해도 신뢰할 수 있는 이웃일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것이 신앙하는 사람들의 기쁨이고 행복인데 말이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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