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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as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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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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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있었다. 일반봉투가 아닌 연하장이 담긴 봉투였다. 발신자 이름을 보니 일본 동경에서 온 것이었다. 들고 들어가서 봉투를 열었더니 크리스마스카드가 들어있었다. 볼펜으로 쓴 인사말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그동안의 안부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통한 축복인사였다. 80세나 된 분이 잊지 않고 카드를 직접 만들어서 인사와 함께 축복을 비는 기도까지 담았다.

금년에 처음으로 받은 카드다. 사실 국내에서 보내오는 카드를 받은 것이 언제쯤인지 기억에 없을 만큼 멀다. 카드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없어진 탓이리라. 우리 사회에서 카드를 만든다는 것을 잊은 지 오랜 것 같다. 편리해진 SNS의 위력에 아날로그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능력과 여유가 없어진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받아든 카드가 참 귀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일본에서 전해오는 카드는 끊이지 않고 매년 꽤 여러 통을 받는다.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에 남아있는 풍습이라고 할지, 카드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아직은 지속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지인들이지만 수십 년을 한결같이 전해주는 크리스마스카드는 그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끄나풀이 되어주고 있다.

현실적으로 카드가 전해지지 않는 것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유용성 면에서 많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카드보다 편리하고, 빠르고, 경제적인 SNS를 통한 다양한 카드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니 굳이 카드를 만들거나 보내는 일은 번거롭고 경제적이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서점이나 문방구에 진열된 크리스마스카드는 옛날만 못하다. 수량이나 내용면에서도 그런 것 같다. 더욱이 손글씨 편지는 물론 카드를 주고받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현상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도 않다.

손글씨로 쓰는 편지를 읽을 수 없는 시대에 카드를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손글씨 편지를 비롯한 카드 한 장은 사람의 마음을 여러 가지로 풍요롭게 한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한 시대의 상황과 문화적 수준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정보가 한 장의 카드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을 다시 보는 순간 보낸 사람과 함께 했던 일들이 시간을 거슬러 오롯이 기억을 되살려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내 기억에 있는 한 내가 받은 카드는 모두 보관하고 있다. 그 중에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도 있다. 모두 박스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기에 꺼내보는 것은 어렵지만 가깝게 둔 것을 어쩌다 들춰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 채 카드를 보낸 주인공과 시간을 넘어 교제를 하게 된다. 기억에 없었던 사람, 사건, 관계가 카드를 통해서 불러오기가 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디에 저장되었던 정보인지, 스스로는 모르겠는데 카드를 보는 순간 불러오기가 가능해진다.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쓰레기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 생애와 의미를 함께 한 이들의 것이기에 귀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모두 간직하고 있다.

 

일본에서 온 카드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사실 그분과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고, 가까이 교제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30년이나 되는 긴 시간에 변함없이 인사를 나눠주는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카드를 보내주는 사람들 가운데 그의 카드를 기다리게 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일본 중부지방 산악지역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그곳 지방공무원을 퇴직한 사람이다. 아직 그의 카드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아프지 않는 한 보내올 것이다. 그의 카드는 특별하다. 그래서 그 카드가 도착하기 전 이번엔 어떤 그림일지를 기대하게 된다. 그는 한 해 동안 자신이 만났던 예배당 가운데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직접 그려서 보내준다. 그림에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의 카드는 예배당 그림과 그 여백에 몇 글자 적어놓은 것이 전부지만 그의 마음과 생각이 담겨진 것으로 늘 기쁨을 준다. 그의 나이도 80이나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게 카드가 전해지고 있다.

한데 정작 내가 카드를 마지막으로 발송한 것이 2013년이니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매년 카드를 만들어 보냈는데, 2014년부터는 단 한 장의 카드도 보내지 못했다. 금년에도 계획에 없으니 패스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리라. 몸도 마음도 여유를 잃게 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데, 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금년에도 그냥 지나칠 판이니 모든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언제까지 받고만 있으려고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묻지만 금년에도 답이 없다. 내년에는 다시 카드를 만들어보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년에 가봐야 할 것이라는 속내도 그대로인 채 말이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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