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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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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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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출세작이다. 홀아비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5일 만에 말린(돌고래일종)을 낚았으나 귀항 중에 상어 떼를 만난다. 그는 초인적이고 필사적으로 상어 떼를 격퇴하고 투쟁하지만 결국 앙상한 뼈만 남은 체 항구로 돌아온다. 그래도 헤밍웨이는 산티아고를 통하여 인간승리를 노래한다.

‘인간은 죽는 일이 일을 망정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산티아고 노인을 입을 빌어 역설한다. 이는 마치 니체의 초인사상과도 같고 까뮈의 시시포스 의지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결국 무신론 작가 헤밍웨이는 인간은 죽는 일이 일을 망정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삶의 강열한 투쟁의지를 한 노인에게서 뿐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전체의 의지로 확대 승화시키려는 메시지를 발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끝에 나오는 앙상한 하얀 뼈 그리고 혼절한 것같이 지쳐버린 산디아고의 처절한 모습은 을씨년스러운 인생 황혼과 허무함을 강열하게 느끼게 한다. 저는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가 10년간 살았던 집을 가보았다. 고급별장 같은 단층집이었는데 사냥을 좋아하는 야성적인 덩치에 비하면 너무 자상하고 아기자기하게 산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가용 비행기, 몇 척의 요트, 많은 연문을 뿌리며 잘 살았다. 그러나 그는 남은 건 하얗고 앙상한 뼈뿐이라는 소설의 종장처럼 청장년의 영광과는 너무 현격하게 1961년 61세 때 고향에 돌아와 엽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참 좋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와 친구사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의료선교사 꿈을 버리지 못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도 자녀들에게 엄격한 신앙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어렸을 때 예쁜 성가대 가운을 입고 노래하는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청년시절부터 불신자로 타락하고 말았다. 그가 방탕할 때 어머니는 자주 타일렀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의 생일에 케이크를 보내면서 권총을 넣어 보냈을까?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암시였다. 그는 회개하고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께 “나도 예수를 믿고 하나님도 믿어요. 남부끄러 우니까 이런 편지 누구에게도 보이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세속적인 영화와 향락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갔고 지적인 교만은 그에게 점점 두꺼운 갑옷을 둘러치게 만들었다. 그는 자살하기 얼마 전에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을래야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운 공허 가운데 살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세 번 이혼, 네 번 결혼했고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61세에 자살하였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7편의 소설, 6개의 단편소설 모음집, 2개의 논픽션을 출판했다. 그의 유명한 소설은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리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타게 한 ‘노인과 바다’가 있다.

그러면 그의 화려했던 명성과 재산이 자살의 병을 앓기 시작할 때 과연 그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는가? 그의 분망했던 여성편력이 쇠잔해진 그의 생명에 어떤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가. 그의 값비싼 여러 개의 별장이 그의 꺼져가는 영혼에 어떤 의미라도 안겨 주었는가. 결코 아니었다. 그 누구도 신앙을 포기하면 그것은 곧 자기 생명을 스스로 포기함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지성과 야성의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산디아고 노인에게 투영시켜 놓고 산디아고의 최후를 결코 패배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자신에게 60이 넘자 엄습해오는 삶의 허무의식과 너무 일찍 노년기에 겪어야했던 정신적 위기를 그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화려했던 그의 비극적인 삶의 종말을 직시하면서 흐트러졌던 삶의 자세를 올곧게 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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