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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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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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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농수로(農水路)나 개울과 같은 습지에 살고 있는 고마리가 잡초신세를 면하면서 화사하게 꽃을 피울 즈음이면 가을이 깊어진다. 그 즈음이면 가을은 다양한 색깔을 갖게 된다. 단지 눈에 보이는 색깔만이 아니라, 비록 보이지 않지만 가을만의 색깔이 있다. 한기(寒氣)를 느끼게도 하지만 따뜻함을 간직한 색깔이 있다. 여름날 후텁지근하고 끈끈한 열기를 느끼게 하던 때와는 다른 색깔과 분위기가 있다.

그즈음 하늘은 더욱 높아지고 깊은 파란색이 된다. 그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주면 대지의 색깔은 마음껏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결코 사람이 흉내를 낼 수 없는, 포근하면서도 상념에 젖게 하는 색깔로 채색이 된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캔버스가 되는 날이면 가슴이 먹먹해지게 하는 명화가 그려진다. 하늘이 높아지는 공간에 그려지는 대지의 그림은 아름답다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온 몸을 벅차게 한다.

여유롭고 넉넉함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와 함께 파스텔톤의 대지는 가을이 깊어질수록 그 색깔이 변해간다. 하지만 그렇게 변해가는 색깔도 오직 가을만의 것이니 좋다. 짙었던 푸른색이 조금씩 옅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가을만의 색깔을 만들어준다. 그 절정에 이를 때면 모든 생명들이 기뻐하는 듯 화사함과 넉넉함을 더해준다. 봄날의 농부는 바쁘기만 하다. 여름날의 농부의 모습은 지친 모습이다. 하지만 가을날의 농부는 걸음걸이조차 여유롭다. 딱히 하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부터 넉넉해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딱히 오라는 사람이 없지만 가을이 오면 그 날을 맞으러 들녘으로 나가고 싶다. 가을걷이가 시작된 곳은 허허로움이 깃들면서 아름다운 색깔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빈자리마저 넉넉하게 느껴지는 것은 벌써 때를 알고 먼 길을 날아온 겨울철새들의 먹이를 준비해준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부지런한 녀석들이 내려와 먹이를 구하고 있다. 녀석들의 존재감은 가끔씩 날아올라 군무를 출 때다. 음치의 극치를 들려주는 울음소리지만, 그 소리마저 정겨운 것은 그 들판이 녀석들의 무대이기 때문이리라.

여름날의 햇살은 피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을의 햇살은 맞으러나가게 한다. 한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모든 열매를 익히기에 꼭 맞다. 적당한 빛과 열을 가해서 느낌자체가 넉넉하다. 지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살을 찌워주는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그래서일까. 여름날의 햇살은 꼭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가을날의 햇살은 모두에게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더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인지 가을에 지는 해마저 아름답다.

그런 날이면 들녘 어딘가 피어있을 고마리를 찾게 된다. 주로 수로나 습지에 자리하고 있는 녀석들은 가을이 깊었음을 알게 한다. 점점 찾는 사람이 없어질 즈음에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은 녀석들만의 외로운 고고함이리라. 비록 찾는 이가 없는 곳이고, 드러나서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도 아니지만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기에 그곳에서 가을을 만들어주고 있다. 쓸쓸해져가는 곳에서, 점점 무채색으로 변해갈 그곳에서 작은 꽃을 피워 군상화(群像畫)를 그려놓는다. 하여 들녘을 걷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가을의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들녘을 걷노라면 녀석들을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가을이 오는 날이면 들녘을 걷고 싶다. 특별히 들녘인 이유는 넉넉함과 함께 그려주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녁나절이면 들녘 끝자락으로 해넘이가 장관이다. 굳이 고흐의 <만종>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가을날 저녁노을과 함께 들판 가운데 서 있노라면 <만종>의 주인공이 된다. 황홀할 만큼 멋진 그림이 그곳에 있기에 더 머물고 싶다. 그리고 해넘이와 함께 천천히 하루를 마무리 하는 기쁨은 다시 귀로(歸路)의 기쁨까지 더해준다.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 때가 지나고 있다. 들녘은 점점 무채색으로 변해 갈 것이다. 하여 가까운 호조벌을 찾았다. 수로를 따라 무심히 걷노라면 싱그러운 볏짚의 내음이 멀리 향리의 산허리에 걸린 연기띠를 그리게 한다. 가을날 저녁나절 밥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대기의 흐름을 따라 산허리에 머물면 만추의 풍경화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젠 호조벌을 걸으며 그러한 정경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하지만 호조벌 끝자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해넘이는 장관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2019년 가을을 갈무리할 수 있는 날이면 좋겠다.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어진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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