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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역사와 진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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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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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1975년 4월 30일 월남 패망 당시 자유월남에서 빚어진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학살, 억류 그로인해 조국을 등진 보트피플의 비극과 참상을 우리 젊은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벌써 44년이니, 반세기 전의 일이며 더구나 남의 나라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지금 베트남에 신혼여행이나 관광을 다녀온 사람들은 저들의 발전상을 보면서 월남이 월맹에 의해 공산화 되고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지만 그렇게 자유롭고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일면 사실이면서도 포장만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세월이 반세기나 흘렀고 국가정책이 많이 변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공산화 당시 무자비한 숙청 및 학살, 강제퇴거, 집단재교육을 위한 수용소와 그 안에서 벌어진 죽음, 종교인 학살 등은 통계를 통하여 밝히며 글을 이어나갈 것이다. 전쟁이 끝났는데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회상되었으면 지금 베트남은 국제적으로 젊은 인구가 제일 많다. 물론 공산주의 경제가 폭삭 망하자 그들은 사회주의를 저변에 깔고서 자본주의를 과감하게 수용하여 개혁개방정책을 펴고 미국과 수교를 맺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국에 외국 우수기업과 공장을 적극 유치하면서 관광도 활성화하는 등 경제개발을 이룩하고 있다.

자, 이야기를 4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75년 월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된 후 군인과 경찰은 수용소로 보내졌고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은 물론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며 월남패망에 앞장섰던 ‘짠후탄’ 신부 등 종교인, 교수, 학생 통일 운동가들까지 다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고 대부분 처형되는 등 수백만 명이 처형 학살되었다.

‘베트콩과 월맹의 내막’을 쓴 저자 리 라닝의 증언에 의하면 “베트콩으로 활동한 월남인들은 모두 숙청되었고 일부는 재교육 수용소에서 월남인 적들과 함께 수용하여 제거해 버렸다.”

이렇게 월남 패망에 앞장섰던 인사들까지 처형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변절, 반역)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행하는 잔인무도한 혁명전술전략이다. 우리나라 해방 후 북한에서 김일성에게 충성하던 김원봉과 남한에서 공산당조직 활동하던 박헌영 등 수많은 공산주의자들도 결국은 다 숙청당하는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북한 김씨 왕조를 추종하다가 좌경 공산화되면 순수한 백성은 물론 북한을 추종하며 일생을 바친 자라도 무자비하게 숙청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은 1975년 4월 자유월남이 패망 후 월맹정권이 자행한 만행을 자료삼고 탈북자들의 진술을 조합하여 만일 남한이 공산화되거나 북한에 의해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경우를 예상해서 만든 것(발췌한 것)을 보면

1. 인구조사와 주택조사와 재산조사를 일거에 완료한다. 월남화폐는 휴지가 되고 모든 재산은 매매가 동결되며 팔고사면 처형된다.

2. 거주지간의 이동을 금하며 허가받은 자만이 이동할 수 있다.

3. 일거수일투족을 담당자,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4. 불평불만 하는 자, 허가와 사전승인을 무시 하는 자를 공개처형하며 처형장은 학교 운동장 을 이용한다.

5. 1가구 2주택 이상 소유자, 1억 이상 재산 소유자, 놀고먹는 자, 사회 범죄자(술주정뱅이, 강도, 성폭행 자, 소문이 안 좋은 자 등)는 집단 처형해 버린다.

6. 모든 물건은 배급제로 한다. (식량, 물까지)

7. 전직공무원, 군인, 경찰들은 재교육장에서 강제 노동케 한다. (월남의 경우 5년 안에 사망)

8. 말을 함부로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한다.

9. 모든 처형은 재판 없이 즉결 심판으로 한다.

10. 남한의 아파트와 집들은 전부 북한 노동자들이 차지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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