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정

문화 이야기 분류

추 교수의 문화 이야기 - 가을의 기도, 가을의 영성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 “겸허한 모국어로 기도하게 하소서 

 

 - 코로나 타령

 어디를 가나 주제는 코로나다. 인사도 코로나로부터 시작한다. “코로나 조심하시죠?”

그러다가 다시 코로나로 이어진다. “어제는 천 몇 백 명 확진자 나왔대요.”

상대방이 퉁명스럽게 받아친다. “그거야 통계 놀음이죠. 많이 검사하면 많이 나올 거고, 적게 하면 적어질 거고. 요즘에 누가 믿습니까? 정치방역이라고 다 그러는데,” (허 쩝쩝...)

분위기 이상하게 돌아가니 또 코로나를 엮는다. “그나저나 백신 맞으셨어요?”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대화하는데 누군고?) “, 네 접니다. , 네 그 일은... 코로나 이후에 뵙지요. 코로나 델타변이가 위험하다는데... 코로나 이후에 만나요.”

 

 - 코로나 타령, 이제 그만

 오나가나 코로나. 뉴스를 봐도 코로나. 정말 코로나 세상이다. 2년 전에만 해도 독감처럼 몇 개월 끌다 사그러들 줄 알았는데 벌써 2년째다. 전문가에 의하면 앞으로 위드 코로나 (With Corona)란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여 우리와 함께 한단다. 지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밀한 존재였다고 우리 곁에서 떠나질 않나! 몸이 조금만 이상하게 느껴져도 이거 혹 코로나 증상? 스스로 의심하고, 해열제도 먹어보고, 그야말로 코로나 히스테리다. 전 세계가 집단 히스테리에 걸려 있으니 분노 조절 장애도, 인종 차별적 범죄도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불안감이 만연한 시대에 돌입한 듯 하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실존의 불안은 국가도 쉽게 막아내지 못한다. 코로나 블루, 레드, 블랙이 바이러스 감염을 타고 사람의 마음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How should we then live? F.Schaeffer).

 

 - 가을은 가을이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의 폭염, 낮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치솟고 거리에 나서면 금방이라도 파김치 되는 듯 뜨거웠다. 그 한 가운데서 열대야에 잠 못 이루며 헉헉대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바로 며칠 전이다. 에구 이런 날이 일 년 열두 달 계속되면 어찌 살아갈고. 적도 아래 사는 이들 안타깝구나.

일종의 종말적 불안감이었다. 종말적 생각은 현실에 깊이 들어와 있는데 세상의 끝”(Endtime)은 멀게 느껴진다. 코로나가 종말론(Eschatology)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에 걸려 사람 목숨이 경각간에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 그런 심리적 종말론이다. 어떤 이도 아직은 코로나로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끝나면 세상도 끝난다는 개인적 차원의 종말론이 팽배해진다. 여름 무더위는 공연히 이런 세상 끝에 대한 상상을 부추겼다. ‘에이, 이 놈의 세상!’ 그렇게 내뱉는 말이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그 뜨겁던 날들이 조용히 고개 숙였다. 뜨거워봤자 낮 동안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아니 이것은 무슨 조화인가? 그렇다. 하나님의 섭리에 맞게 계절이 순환된 것이다. 여름 지나 가을이다. , 입추(立秋), 진짜 가을이다! 무슨 해방이라도 맞이한 듯, 광복절의 기쁨을 느끼는 듯하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을까, 우리나라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선조들이 그러했을까. 완전한 해방감이 이렇게 느껴질까. 이 가을의 도래가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더 이상 세상 시름에 억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딴 세상, 새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제는 가을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분명 일하신다. 섭리자 하나님께서 확실히 천기(天氣)를 운행하신다는 빼박증거.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지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4,5)

 

 - <가을날>, 우울한 부정(否定)의 시학

 가을이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들이 있다. 실존적 서정시인 릴케(Rilke)<가을날>에서 이렇게 가을을 바라본다.

주여..... 지난 여름은 위대했습니다.

......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 것입니다.

......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헤멜 것입니다.”

 

릴케처럼 생의 의미, 실존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시인은 또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자신의 생을 궁극의 절망 끝으로 밀어 넣으며 삶의 바로 그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시인. 인생을 하나의 실험실로 여기며 자신을 실험대에 밀어 넣어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던 작가, 그러나 그의 가을은 쓸쓸하게 다가왔다. 고독하고 불안했다. 파리 한 구석 지붕 밑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초췌한 말테가 그런 모습이다.

 

낯선 땅에 홀로 외로운 이방인. 마치 코로나에 쫓겨 막다른 골목에 몰린 우리 현대인들처럼. 안온히 거할 집을 짓지 못한다. 그런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집 밖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홈리스가 되어간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부조리한 이 실존 상황은 모두 코로나때문이다. 그렇게 여긴다. 집 밖에서 불안에 떨며 거리를 헤매는 현대인, 그게 우리들의 초상은 아닌지. 모든 게 코로나 너 때문이야!

 

 - 그러나, 기도하게 하소서 

 또 다른 시인이 있다. 김현승. 그는 <가을의 기도>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혹 우리의 처지가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까마귀같을지라도. 릴케의 이방인 같을지라도. 기도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지금은 가을이 아닙니까!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제는 대기 신선한 날의 가을 아닙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이렇게 명확하게 나타나는데 어떻게 낙망과 회의에 주저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코로나 핑계대고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만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름다운 우리말로 재잘재잘 아버지 하나님께 재잘거리게 하소서.

 

가을이 깊어지면 그 때는 열매를 거두어야 할 기회가 또 다가옵니다. 지금 코로나 타령만 하고 있으면 무슨 낯으로 결실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어나 추수를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126:5,6)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도!

 거룩하신 주 예수님, 우리의 실존이 이러하오니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1:1).

그렇다. 우리에게는 최종 무기 기도가 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자기위안, 자기만족, 자아도취, 자기욕망 해소를 위한 게 아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호흡이다,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이다, 하나님과의 사랑이다라는 사전적 설명을 뛰어넘는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결전이다. 영적 결전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상하시게도 야곱과의 씨름에 응해 주셨다. 하나님이 이보다 얼마나 더 자신을 낮추실 수 있으실까. 비록 야곱이 이렇게 말했지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하나님은 그 욕심장이 같은 야곱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 그를 씨름판으로 초대하신다. 축복에의 초청이다. 그리고는 져주신다. 마치 아빠가 꼬맹이 아들에게 져주듯.

 

그 결과는 당연히 축복이다. 야곱은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2:28)로 불리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씨름이다. 사랑과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의 기도를 축복하시리라. 왜냐하면 기도의 장막으로 우리를 부르셨기에. 부르신 분이 주님이시기에 상급 또한 예비되어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제는 코로나와 싸울 필요가 없다. 코로나와 싸우지 말자. 코로나는 진정한 우리의 대적이 아니다. 코로나 핑계 그만해야 한다. 모든 상황이 코로나 그 놈때문이 아니라, 더 기도하지 못하고, 더 구하지 못하고 더 두드리지 않았던 우리 자신 때문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7,8)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29:12)

 

 - 필승의 무기 기도

 “공격이 최상의 방어다.” 익숙한 전략이다. 소극적 방어 자세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도의 자세가 요구된다. 게다가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이기에.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결과는 확실하다. 필승(必勝)이다.

지금은 연약해 보이고, 초라해 보이고, 가진 것 많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주님께 구하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5)

 

비록, 설령, 현재 아귀다툼 정치판에 신물이 나고, 갈라치기 하는 분열과 혼란에 염증이 생기고, 망둥이 같은 이가 뛰고 날더라도. 어제 산 주식이 내려앉고, 상승가 아파트를 사지 못해 벼락거지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누구인가. 주님의 제자요 믿음의 백성이 아니던가. 어찌 세상에 속한 자처럼 똑같이 들끓는 도가니 그릇에 몸을 맡길 수 있겠는가. 담대하고 강하게 하라! 주님이 명령하신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46:10,11)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7,18)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이 왔다. 이 가을에 우리에게 주신 귀한 모국어로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또 기도하리로다. 모든 길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리라.

복되고 은혜 넘치는 가을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계절 이 가을에 각자에게 나타날 가을의 전설을 향하여 가자. 거기에는 믿음으로 이뤄지는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지리니. 추태화 소장 (이레문화연구소 /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