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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교수의 문화 이야기 - <사탄의 자기부정> 전략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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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의 시대에 중심잡기 

 

 하나님 형상인 인간

 시대가 지날수록 인간은 이성주의, 지성주의, 합리주의를 앞세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다른 피조물과 달리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Homo Imago Dei)으로 만드셨다(1:26). 생기를 불어넣으셨다(2:7).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존재하게 된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것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자 축복이다. 이 선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 섭리에 맞게 만물을 다스리며 발전시키는 청지기적 사명을 갖는다(1:28)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속성을 닮은 인간이 그 자유의지로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 서게 된다. 이 갈등(Conflict)의 순간을 사탄이 놓치지 않고 개입한다. 인간에 내재한 갈등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그만 불순종으로 가는 문을 열고 만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절대적 관계에 틈이 생기고, 인류 역사의 비극이 시작한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과정(Return to God)이라는 독일 철학자 바더(Franz von Baader)의 깨우침을 기억한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언젠가 이 땅을 떠나 생명의 주인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경계인 인간

 인간은 경계인이 되었다. 바울 사도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상황을 이렇게 고백한다.“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르스나니”(5:17). 인간이야말로 천사와 사탄의 중간적 존재로서 엄청난 권세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은 은혜와 심판, 은혜와 율법, 구원과 멸망, 선과 악, 거룩과 죄악, 절대성과 상대성, 믿음과 불신, 순종과 불순종, 충성과 배신, 희생과 이기심 등 삶 속에서 경계를 오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경계를 오간다. 그게 인간의 실존일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이 선하게 사용될 때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내주는 행위도 가능하고, 끝없이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속성이 악하게 사용된다면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교만도, 외적인 부귀영화와 무한경쟁에서 극단적 이기주의와 술수를 자행하거나 살인의 악행도 저지르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참지 못하시며 십계명에 주시기까지 교훈, 경고하신 이유는 명백하다. 타락의 끝은 패망, 멸망, 의미없는 종말이다. 이제 인간의 교양과 인격은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더듬어 찾아 발견하게”(17:27)되는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에”(9:26) 구원의 주로 나타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시대 정신(Zeitgeist)이라 불리는 현대 문명에서 끊이지 않고 경계를 오가는 인간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시대적 팩트와 예표로서 역사

 독일 1933-1945. 국가사회주의라 불리우는 나치주의가 한동안 독일을 점령했던 시기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일본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이다. 이 때 독일교회가 양분되었었다. 나치주의에 찬동하는 파와 그에 반대, 저항하는 파가 대립되었다. 나치주의에 물들은 기독교인들은 제국기독교회(Reichskirche, Church of German Empire)라는 단체로 신앙을 왜곡했다. 여기에 대항하여 성경과 복음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 Confessing Church)를 결성하고 나치주의의 오류를 세상에 알렸다. 그 탄압은 혹독했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사례를 겪는다. 일제는 신민일체 정책을 펴므로 동방요배를 강요하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다. 일제 시대에 한국의 기독교계도 독일처럼 양분되었다. 동방요배는 문화적 행위이므로 종교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없다는, 기독교인들이 과민반응할 필요없다는 허황된 이론이었다. 1938년 신사참배 가결은 한국 교회사의 수치요 불명예로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한국과 독일에서 폭압적 정권이 지배하던 당시 교계에서 수많은 희생자, 순교자님들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에 파울 쉬나이더 목사(나치에 저항하다 순교한 첫 번째 목회자), 본회퍼 목사 같은 분이 있다면 한국에는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와 같은 분들이 있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길을 걸어갔다. 지금의 교회는 그 분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타나토스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 방식에 갈래가 있다. 그 중 나치시대, 일제시대 같은 시기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단지 비인간적이며 몰인격적인 악()한 정권이었다고 표현하기에는 심히 부족하고 영적으로 미진하다. 또한 6.25 전쟁 시기, 하나님을 부정하며, 신앙인을 증오하던 공산주의의 배후에 단지 유물론적 인본주의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독교를 탄압하고 말살하려는 방법이 그토록 체계적이고 전략적이라면 이것이 어찌 인간의 무지(無智)에서 나온 행위라며 지나칠 일인가.

일제는 조선의 개화(開化),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위대한 국가 재건, 공산당은 민족해방이라는 그럴듯한 구호로 사람을 미혹했다. 그 과정에서 비인간적이며 반신론적인 살상을 감행했다. 그들의 선전선동(Propaganda)은 지극히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정교하게 꾸며진 정치 기술이었다. 고도의 정치공학이라 하겠다. 집단 체면, 집단 히스테리, 우민화 정책은 조직적으로 사람을 지배했다. 그 끝은 무자비한 죽음이요, 여기에 작동한 것이 바로 죽음에의 경도라는 악의 속성(Tanatos)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가! 더 이상 사악해질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실제로 일제가 태평양 지역에서 전쟁한 때 가미가재(神風)라는 자살 특공대가 활약했고, 나치 시대는 학살전문가 집단인 SS(친위대), 비밀경찰 게쉬타포 등이 특권층으로 군림했다. 일제 때 희생된 기독교인만 하더라도 그 숫자가 적지 않고,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이 6백만 명이며 이차 세계대전으로 희생된 사람이 수 천만 명에 이른다. 6.25 당시 공산군에 순교하거나 피해입은 기독교인 수는 가히 셀 수가 없다.

 

 본회퍼 목사, “사탄의 성육신을 경고하다

 이런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미쳐 날뛰던광란의 시대라고 규정하기도 어렵다. 분명 살아있는 믿음으로 난세에 남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정상적이었고, 그 정상적인 사람들이 탄압과 핍박을 받았다. ‘비정상이 지배하여 정상을 탄압하던 현상을 어떻게 올바른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치 시대, 일제 시대, 6.25 전쟁 같은 인류 역사를 지나오면서 현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전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국제 질서를 조율해 가며 혼란을 수습하는 정도의 평화가 진정한 평화일까. 그것이 최선일까. 인간 생명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비인간적 야만성, 비정함, 잔혹함이 횡행하는 시대를 평화 시대라 말할 수 있을까. 전체주의 폭정이 가시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 평화라 할 수 있을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전체주의 권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서 횡행할 때는 사탄을 배후로 지목하기 쉬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면서 귀신이 씌여서’‘사람이 제정신이면 이럴 수 없지하면서 그 핑계를 사탄에게 전가하기 쉽다. 이때 사탄은 자신의 이름을 잠시 빌려준다. 하지만 비밀스러우며 은근한 권력은 그 배후를 눈치채지 못할 수가 있다. 과연 어떤 세력이 시대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을까. 과거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본다면 단연 나치주의가 집권하던 시대이다.

 본회퍼 목사의 진단이 탁월하다. 그는 이런 현상을 사탄의 성육신”(incarnation of satan, 成肉身)이라 간파했다. 권력의 최고 정점 히틀러를 위시하여 수많은 나치주의자들은 사탄의 하수인이요 곧 사탄이었다고 본 것이다.

사탄이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어떤 인간, 어떠한 인격체일까? 나치시대를 염려하던 교계지도자 본회퍼 목사의 결론이었다. 히틀러를 사탄의 재현이라 본 것이다. 그런 사상에 동조하고 환호하고 실제로 행동하는 이들은 사탄에게 지배 당하고 조정을 받고 있다고 보았다. 이 현상은 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 종교개혁의 루터가 성경에서 역사 전환의 대 전기가 되는 말씀을 발견했듯, 본회퍼 역시 그러했다. 루터는 로마서에서 성령의 조명,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시대를 예언한 성경 말씀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21:8)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마랄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쉬츠 목사, “사탄의 자기부정전략을 고발하다

 어떻게 이런 만행이 가능했을까라는 의문이 어느 정도 풀린다. 사탄이 인간의 이성, 지성, 합리성을 장악하여 인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전된 시대에 무슨 사탄이 있는가! 사탄 운운하는 자들은 잘못된 신앙을 갖고 있다. 코흘리개 같은 유치한 신앙이다, 이성이 마비된 무식한 자들의 잠꼬대일 뿐이다....’등등.

당시 파울 쉬츠(Paul Schuetz) 목사는 사탄의 자기부정”(Die Selbst-Leugnung des Teufels, Self-denying des Satans) 전략을 경고했다. 사탄은 스스로를 부정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사탄은 자기가 없다고 스스로를 부정한다. 자신을 숨기고 속이려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사탄은 지식인, 교양인, 합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사탄 같은 것은 이제 없다! 별나라, 달나라 가는 과학의 시대에 사탄은 무슨... 그런 황당한 소리를 믿는 자들이 과연 현대인이라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이성, 지성, 합리성을 부추기며 시대정신을 호도한다. 모든 가치와 의미를 부인하는 허무주의(Nihilism)이다.

사탄은 니힐리즘이 극단적으로 현재화한 인격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곧 부정의 영으로 인간의 마음에 죄악의 꽈리를 트는 인격이다. 시대가 악한 방향으로 질주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분명 사탄의 활동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그 방증이 나치주의의 만행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일제 시대나 6.25 전쟁 당시는 어땠는가? 현대와 현재는 어떤가? 이 깨달음을 기준한다면 역사 속에 숨은 여러 의미들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본다.

 

 좀비의 상징성

 문화 현상을 비유적으로 말해보자. 현재 좀비 소재가 세간에 자주 등장한다. 몇 년 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부산행>, 후속작으로 <반도>가 상영되었다. <킹덤>은 인기(?) 드라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 밖에도 <기묘한 가족> <살아있다>, 미국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 <좀비 랜드> 등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람의 본질과 영혼을 잃고 악귀로 변해버린다는 무서운 현상이 등장한다. 영화는 영화이니 그것이 한국에서 일어났건 미국에서 일어났건 중요하지 않다. 의미심장한 것은 영화가 시사하는 메타포(Metaphor) 아닐까. 시대적 증후를 드러내 주고 있다.

현대 사회에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부정적 감정이 있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은 이를 더욱 부추기는 추세다. 불확정성과 모호한 다중성, 무한경쟁, 스트레스와 번아웃, 여러 중독증(알콜, 니코친, 마약, , 섹스, 권력, 게임, 주식, 종교 등), 집단 히스테리(유행, 광풍 포함), 권태와 무기력, 만성불감증, 만성피곤증, 분노조절장애, 공황장애, 피해의식, 상대적 박탈감(벼락 부자, 벼락 거지), 낮은 자존감, 집착증, 강박증, 우울증, 불면증, 자폐증, 실어증, 건망증, 극단적 이기심, 무관심, 고독감, 외로움.....

시작은 다양하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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