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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교수의 문화칼럼 - 태초에 하나님이 ‘아날로그 사람’을 창조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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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 (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


 미래사회, 격변 시대

 우리는 현재 2021년도를 살아간다. 19991231일을 지나면서 이른바 Y2K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컴퓨터가 000을 분간하지 못해 사이버 상에서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 했는데, 결과는 의외로? 아니 정상 작동되어 무사히 200111일을 맞이했다. 2천년대는 그렇게 시작했다. 먼 과거로 돌이켜 보면, 1890년대에서 1900년대로 전환하는 시대도 인류는 대혼란을 겪었다. 당시 유럽 문명은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역사낙관론(Optimism)에서 새 시대를 환호하거나 아니면 역사허무주의(Nihilism) 내지는 절망론에 휩싸여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20세기에 들어선지 불과 십여년, 19141차 세계대전을 맞아 비관적 예감이 맞는 듯 했다. 이제는 어떤가?

 현재는 몇 가지 큰 변동 시프트(Shift)가 작동하고 있다. 디지털, 인공지능(AI), 4차 산업혁명, 그리고 갑자기 대두한 코로나(Covid-19)라는 전염병이다. 현대 문명은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어두운 터널을, 그것도 고속 질주하는 느낌이다. 고장난 차라도 서 있으면 충돌은 불가피하고 대형사고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인류 문명사는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도가 아닌가.

그런 상황 가운데 개인의 실존은 무시할 수 없다. 지구촌 단위의 거대담론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사소한 삶 또한 경시될 수 없다. 인간은 철저하게 현실 의존적(Reality-dependent)이기에. 세상이 아무리 요동친다 해도 개인의 삶은 소중하다.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한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둘 다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분명 문명의 소용돌이를 몰고 오는 중이다. 집단은 집단 차원에서 대격변에 대응하겠지만 개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의 반쪽은 어디에?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직장인이다. 회사에서 관계도 성과도 모두 좋다. 게다가 대도시에 적당한 감성을 지녔다. 문제는 오랜 시간 지내온 부부 사이에 사랑의 전선에 이상신호가 생긴 것. 헤어지자는 결론에 이르자 이혼 서류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는 사이에 찾아온 외로움. 이 도시남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흔들리며 안정을 찾으려 하지만 중심을 잡을 수 없다어느 날 그를 울리는 반가운 소리를 듣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것엔 무엇이 있죠?” 가히 철학적인 질문 같아 지나쳐버릴 것 같은데 테오도르에게는 절실하게 다가왔다. 누가 이 외로운 상황에서 나를 건져줄 것인가? 이런 고독감은 예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덥석 인공지능 OS1을 구매한다. 마치 구원자의 손을 잡는 듯한 심정으로. 인공지능 OS1은 사람의 인격을 닮은 소프트웨어.

 그날부터 테오도르는 사만다라는 여친이 생겼다. 여친은 그가 가는 곳마다 동행한다. 직장에서도, 일과 후에도, 집에서도 거의 함께 한다. 그가 있는 곳에는 그녀가 있다. 마치 한 몸인 듯 언제나 같이 움직인다. 공존과 공생이 이런 것일까. 어떤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친이라도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다. 자신이 묻는 말에는 언제나 상냥하게 대답하고, 심지어 기분이 어떠냐?” 묻기도 한다. 그는 점점 사만다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습관에 길들여져 테오도르는 착각에 빠져든다. 사만다가 언제나 곁에 있어 자신의 외로움을 날려주고, 자신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느낌. 그러나 아날로그인 인간이 기계로 완벽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 사만다는 능력이 무한에 가까웠다. 18만 개의 파일을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아 분석, 파악한다. 테오도르의 목소리에서 어떤 감정인지 분류해 낸다. OS1은 아날로그 남친을 위해 그의 작품을 정리하여 출판사에 보내고, 긍정적인 답을 얻게 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여친이 가능할까. 테오도르는 점점 사만다와 사랑이 가능할지 묻는다. 가능하다고 믿으려는 순간,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인공지능 여친은 테오도르와 대화하는 순간에 수천 명과 동시에 소통하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대상이 또한 수백 명에 이른다는 것. 무엇이 진짜 현실이며 무엇이 진실인가? 테오도르는 리얼(real)이 무엇인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가상현실과 진짜현실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아날로그 사람을 창조하시니라

 테오도르는 OS1과의 감정 교류에서, (그는 그것을 사랑의 교감으로 느끼고 싶었지만) 인공지능과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공지능은 기계일 뿐이다. 인간이 인격적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인간 외에는 없다. 더구나 기계와는 이뤄질 수 없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인격을 갖추는 것 같지만 그것은 생명이 아니다. 인간의 사랑은 창조의 생명성 안에서 이뤄지는 교감이다. 창조 안에 이미 내재된 신적 DNA이다. 사람의 생명은 아날로그로 이뤄져 있기에 존재도 사랑도 창조의 아날로그를 기반으로 가능하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떠나고 나서 깨닫게 된다. 자신은 과거 사랑을 잘못 알고 있었다. 사랑의 명분으로 사랑하는 이를 지배하려고 했고, 자신에게 맞춰 달라고 요구했었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는 사만다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랑은 사람 사이에 생명을 나누는 행위인 것을. 사랑은 아날로그적 생명이며 고도의 인격적 교감이라는 것을.

 

 영화 HER, 두 가지 관점

 이 작품을 미래공상과학(SF)의 측면에서 보자면 시사하는 점이 많다. 인공지능이 이미 현실에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으니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인공지능은 산업용, 가사용, 교육용, 군사용 등으로 활발히 활용되는 가운데 인간의 반려용품으로까지 개발되고 있다. 반려동물처럼 인공지능 반려인형이 서서히 인간의 자리로 들어오는 중이다. 영화는 반려 인공지능과의 아날로그적 사랑의 교감은 결국 불가능하다고 암시한다. 사랑은 기계와 교감할 수도 없고, 기계는 더구나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은 창조와 생명에 속한 인격체의 신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고도의 연산 체계로서 무생물인 기계이다. 무생물은 생명을 만들 수 없다. 생명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에서 나온다. 인간의 사랑은 생명의 교감이기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

 영화 HER는 그런 면에서 성인동화나 우화라 하겠다. 현대인이 겪는 상실감, 고독감은 고도의 인공지능이라도 치유해 주지 못한다. 인간이 갖는 내면의 문제는 인공지능이 어떤 보조적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으로 인해 가능하다. 결국 사만다는 사이버 세계 어디론가 떠나고 테오도르는 인간의 현실로 돌아온다. 아날로그는 아날로그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의 상실도 사랑의 치유도 아날로그로 지어진 사람에게서 가능하다. 아무리 고도의 인공지능 세계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대체할 수 없는 창조의 영역은 엄연히 존재한다. 추태화 소장 (이레문화연구소/ 전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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